[안승준의 다름알기] 나인 듯 나 아닌 나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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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는 도로명 뒤로 과거 배경이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미래라는 도로명 뒤로 과거 배경이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를 만난다는 건 타임머신을 타는 것과 같다. 삶이 바빠서 거리가 멀어서, 아이를 키우느라…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 그때 그 시절이다. 외모도 목소리도 아저씨가 된지 오래이지만 친구 녀석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다 보면 4D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느새 대학생도 되고 어린아이도 된다.

장소도 시간도 분명 그때 그 시간과는 너무 다르지만, 우리 감정의 주파수만큼은 이야기 주제가 되는 과거의 시간과 정확히 동기화된다.

“그때 그 녀석 참 재미있었는데!”

“그 선생님 한 번 꼭 찾아뵙고 싶다.”

“그때 그 마음이면 우리가 못 할 게 없지.” 하며 주고받는 대화는 같은 경험을 공유한 진한 동지애를 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시간이 길면 긴 만큼 서로의 기억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거나 그 내용이나 성격이 일치하지 않는 것들도 하나둘 튀어나온다. 나는 기억하는데 친구의 머릿속에는 없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같은 장면을 기억하는데 다른 내용이라거나 정확히 기억되는 발언의 발언자가 뒤바뀌기도 한다.

오래전 일들이 어떤 결론이 났었는지 누구 기억이 더 정확한지 대체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다른 모든 친구가 기억하는 내 모습이 내게 기억나지 않거나 다른 모양의 기억일 때엔 당황스럽고 생경하긴 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때 그게 내가 한 일이야? 정말?”

다수 관찰자의 일치하는 기억이 내가 믿고 있는 주관적 기억보다 확률적으로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알지만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그건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행동도 발언도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도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거나 기어코 반대했을 것들을 내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다른 사람 아닌 내가 하고 있었다.

20년, 30년이 지나는 동안 난 많은 책을 읽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어떤 가치들은 과감히 버리고 고쳤을 것이다. 내 몸의 수십억 개의 세포들이 소멸하고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면서 내 몸의 물리적 존재가 완벽히 다른 분자들로 리모델링 되듯 나의 사상들 또한 그만큼 변했다.

천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시간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변화 또한 그렇다. 문득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존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둘은 매우 닮긴 했지만, 매우 다르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또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건 또 다른 시공간에 존재할 내일의 나도 더 먼 미래의 나도 그럴 것이다.

나름의 단단한 논리로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내 생각들도 종교적 정치적으로 무장한 내 신념들도 나의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다. 그렇다면 다름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일은 어쩌면 더 쉬울 수 있다.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기억나지 않는 나를 나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자랑스럽고 기특한 꼬마도 나이지만 부끄럽고 서툴렀던 그때 나의 실수들도 나의 과거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내가 아닌 듯싶지만, 현생의 내 삶이 포괄하고 있는 나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미래 나의 모습 또한 분명 나이다. 난 지금의 내가 바라고 꿈꾸는 나로 변해갈 수도 있지만 지금 나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내가 바라지 않는 모습으로 미래를 살아갈 수도 있다. 지금은 도저히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그 또한 나이고 내가 인정해야 할 내 모습이다.

과거도 미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는 변한다. 그 모든 나를 나였고 나이고 나일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변화에도 내가 나임을 인정할 수만 있다면 나는 좀 더 많은 다름을 포용할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친구들 기억 속 부끄러운 나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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