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폭행 사망한 발달장애인… 항소심도 ‘미래이익·국가책임’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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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서도 미신고시설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장애인의 일실이익뿐 아니라 국가가 시설 등을 양산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손해배상책임을 기각하자, 곽남희 활동가가 “잘못 판단한 재판부 각성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항소심에서도 미신고시설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장애인의 일실이익뿐 아니라 국가가 시설 등을 양산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손해배상책임을 기각하자, 곽남희 활동가가 “잘못 판단한 재판부 각성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 1·2심 재판부 모두 ‘경험칙상’ 이유로 ‘장애인 일실이익 불인정’
  • 시설장·지자체에 공동불법행위인정… ‘국가는 면죄부
  • 같은 생명 다른 판단한 법원, 차별반성해야

[더인디고 조성민]

미신고 시설에서 거주하던 중증 발달장애인 A씨가 활동지원사의 폭행으로 사망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역시 당사자가 살았으면 누릴 수 있는 ‘일실이익(逸失利益)’은 인정하지 않았다. 1심 당시 재판부는 A씨가 시설에서 엎드려 있거나 기어서 생활한다는 이유를 들어 “경험칙상 도시일용노임 상당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일실수입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 2심 또한 이를 유지한 셈이다.

또한, 미신고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등을 사전에 방지했어야 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도 전혀 책임을 묻지 않자 법원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는 19일 오전 평택 미신고시설 폭행·사망 사건에 대해 A씨의 유족 등이 시설장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모두 기각, 1심을 그대로 유지하는 판결을 했다.

■ 법원, ‘지자체 책임 인정’ 유의미 판결에도 일실이익과 국가책임은 기각

관련해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27일 사랑의집(평강타운) 시설장 김모 씨와 평택시를 ‘공동불법행위자’라고 판단, 유족들이 청구한 약 2억2000만원 중 1억4200만원에 대해 시설장에게는 100%, 평택시에는 70%의 책임을 부과했다. 단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은 기각했다.

▲19일 오전 2심 판결 직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 및 법률대리인단은 서울고등법원 앞체서 평택 미신고시설 폭행, 사망사건 국가배성청구소송 2심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19일 오전 2심 판결 직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 및 법률대리인단은 서울고등법원 앞체서 평택 미신고시설 폭행, 사망사건 국가배성청구소송 2심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당시 장애인 시설 관리·감독에 대한 지자체의 배상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로 평가됐다. 하지만 법원은 사용자(김씨)의 책임만 인정하고, ‘국가책임’과 ‘중증장애인 피해자의 일실이익을 전혀 인정하지 않아 손해배상 액수를 낮게 선정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A씨의 유족들은 다시 소송대리인단을 구성, 2심 재판을 진행해 왔다.

앞서 중증 발달장애인 A(사망 당시 만 37세) 씨는 지난 2020년 3월 8일, 평택시 포승읍 평강타운에서 활동지원사 정모 씨에게 폭행당해 의식을 잃고 숨졌다. 시설장 김씨는 미신고시설 거주장애인은 ‘시설 거주자’로 분류되지 않는 점을 노려 A씨에게 정씨를 연계하며 직원처럼 고용해왔다. 실제 정씨는 시흥 모 협동조합의 소속임에도 이면 계약 등을 통해 관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씨는 A씨가 새벽예배 참석을 거부하자 발로 머리를 세 차례 걷어찼다. 사건 당일 오후에도 정씨는 자신의 캔 커피를 바닥에 쏟았다는 이유로 발로 머리를 또 때렸고 A씨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A씨는 외상성 뇌출혈 및 뇌부종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한편 2심 판결이 나오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와 법률대리인단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를 거세게 성토했다.

■ 국가는 시설 양산, 사법부는 장애인이 죽어도 차별

항소심 법률 대리인을 맡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남희 변호사는 “시설에서 잔혹한 폭행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했음에도 1, 2심 모두 지자체 책임은 인정하고 국가에는 면죄부를 줬다는 점, 특히 손해배상책임에서 가장 중요한 일실이익, 즉 살아 있다면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차별적 판결”이라고 재판부를 성토했다.

김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일실이익은 임금을 기준으로 하지만, 무직이나 아동, 수익이 없는 사람은 일용 노임 기준으로 산정한다”고 전제한 뒤,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장애인의 삶은 죽어도 배상받을 수 없다거나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음을 암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존 판결을 봐도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사법부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남희 변호사(좌)와 이정하 활동가(우) ⓒ더인디고
▲김남희 변호사(좌)와 이정하 활동가(우) ⓒ더인디고

이 같은 판결에 대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계 활동가들의 분노도 거셌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규식 공동대표는 “대한민국 사회는 비장애인만 살고, 장애인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하는 꼴”이라며 “여기에 시설이 장애인을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사법부와 시설을 싸잡아 비판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이정하 활동가도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정부가 양산한 사회복지시설 중 미신고 시설을 방치한 사각지대 속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지자체는 개인 운영시설에 무분별한 지원을 했고 장애인의 인권침해구조를 알고도 묵인한 탓에 사망에 이르렀다”며, “이 모든 과정에서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정하 활동가는 또한 “ 정부는 수많은 시설 조사 과정에서 시설 관계자가 참여하는 ‘셀프 인권조사’를 하고, 심지어 (평강타운처럼) F등급을 받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의 인권을 방치했다”며, “재판과정에서도 정부와 평택시는 한편에 서서 매우 불성실했고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도 없었다는 점에서 유가족과 수많은 시설 피해생존자에게 또 한 번의 피해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가 일실이익 등을 인정하지 않는 2심 판결을 꼬집는 “같은 생명 다른 판단”이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한 참석자가 일실이익 등을 인정하지 않는 2심 판결을 꼬집는 “같은 생명 다른 판단”이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한편 재판과정에서 평택시 소속 공무원 2명은 관내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지도·점검 등의 태만으로 지난 2020년 11월 징계를 받았다.

직접적 가해자인 활동지원사 정씨는 2021년 4월 2심 재판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반면 시설장 김씨는 양형 등을 참조 작년 12월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 등을 선고받았다.

한편 김씨는 형사재판에서 집행유예라는 유리한 판결을 받았지만, 손해배상은 해야 하는 만큼 상고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대리인단은 유족과 논의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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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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