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27] ① 임영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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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화 부모연대 경남지부 합천지회 회원(2월 28일 제27차 화요집회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임영화 부모연대 경남지부 합천지회 회원(2월 28일 제27차 화요집회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경남 합천에서 지적장애 아들을 키우고 있는 아빠 임영화입니다.

아들은 22살입니다. 제가 부모활동을 한 지가 어느덧 십수 년이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와 제 가족의 삶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아들은 덩치가 아빠보다 더 큽니다. 아빠보다 힘도 셉니다. 그 큰 덩치에, 그 센 힘에, 점점 더 심해지는 과잉행동은 부모가 아니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데 어찌 편히 발 뻗고 잘 수가 있겠습니까? 잠시라도 눈을 떼면 어김없이 돌발상황이 발생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여유라는 것을 누려 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하루하루를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의 삶은 나와 내 가족의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저는 아빠입니다. 아빠가 생계를 책임지고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우리는 이미 수년 전부터 그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아이를 책임지고 아이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덩치에 밀리고 힘에 밀리고 인내심에도 밀려 도저히 아이 엄마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보편적인 남편과 가장의 모습을 버리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모두 잠든 밤에도 수시로 깨어 움직이기에 그야말로 24시간을 돌봐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 흔한 퇴근 후 한잔은 정말 머나먼 달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한시적이라면 그나마 희망이라도 있을 텐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나야 어찌어찌 살다 가면 된다지만 우리가 떠나고 남게 될 아들을 생각하면 불쌍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머잖아 닥칠 현실 앞에 너무나 암담해서 그런 생각에 미치면 그저 가슴만 먹먹해집니다. 아이를 홀로 두고 떠나게 될 때 저는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내가 없으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아들은 제가 없는 하늘 아래 누가 지켜줄 수 있을까요?

최근에 발생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참사는 같은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가슴이 무너집니다. 그분들의 가시기 전 삶이 지금 내 모습 이었을텐데… 조금만 더 살아주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지… 뭐가 그리 성급했는지…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이 마음은 우리만의 마음일까요?

제 소원이 있다면 이제 더는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함께 죽음으로 고통을 끝내지 않아도 되고, 장애로 인한 아이의 삶을 부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남들이 누리는 소소한 일상이 그저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라서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런 나라에서 장애인 가족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의 소중한 국민이라는 자부심도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제 국가가 답을 해 주십시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돌봄에 지쳐 하나둘 쓰러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와있습니다. 아직 살날이 까마득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위태하게 버티고만 있어야 할까요?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습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투쟁과 싸움에도 앞장서겠습니다. 나는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투쟁~~~

–2023년 2월 28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27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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