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이상한 여자를 소개합니다

0
325
▲두 사람이 손을 커피 잔에 대고 있다. ⓒUnsplash
▲두 사람이 손을 커피 잔에 대고 있다.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난 연애는 외식, 결혼은 집밥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외식 메뉴는 아주 맛있는 것을 고르기도 하지만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을 택하기도 한다. 손 떨릴 정도로 값비싼 호텔 스카이라운지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지만 다 쓰러져 가는 어느 허름한 가게의 특이한 밥상을 고르기도 한다.

한 번쯤이라는 가정하에 어떤 선택도 가능한 것이 외식이지만 그런 것들을 매일 먹는 집밥으로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싼 것은 너무 부담스럽고 특이한 것은 매일 먹기엔 좀 그렇다. 그래서 한국인의 집밥은 대체로 쌀밥에 김치를 베이스로 한다. 내 입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들 다 그렇게 하니 그게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특별한 고민 없이 매일 아침밥을 짓고 김치를 꺼낸다.

연애나 결혼도 그런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연애라면 잘생긴 사람도 만나 보고 특이한 매력 가진 사람도 만나보지만, 결혼이라는 대사를 앞두고는 남들처럼 평범함을 택하는 쪽을 선택한다. 연애라면 ‘외국인도 장애인도 외계인도 한 번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적지 않지만, 그 문제가 결혼이라고 하면 딱 한 번 먹어보았던 전갈 요리를 내 집밥으로 매일 먹는다고 결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과제가 된다.

매일 전갈만 먹고 살고 싶은 사람도 분명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족이나 주변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집밥으로 그 특이한 메뉴를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확률이 너무도 희박하다. 전갈 요리를 매일 먹지 못했을 때 그가 죽기라도 한다면 모르겠으나 그에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은 너무도 많다.

같은 연유로 장애인에게 연애의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만,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전갈 요리가 집밥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매력적인 시각장애인 한 번쯤 만나볼까 하는 사람도 그와 평생을 함께한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그를 대체할 평범한 비장애인들이 너무 많고 구체적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를 둘러싼 대부분의 주변인은 장애인보다는 비장애인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전갈 요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혹은 장애인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는 세상 사람들에겐 그다지 중요한 논제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끝끝내 그런 선택을 한 이들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눈 보이지 않는 내가 결혼하기 위해선 극악한 확률을 뚫고 이런 이상한 여자를 찾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해야 했다. 물론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증명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 취향이나 이성관과 부합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정을 거쳐야 했으므로 그 확률은 더 작은 수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가 사람들이 말하는 독거 노총각 장애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맘 착한 여성들 가운데 랜덤으로 내 배필을 택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혹시 걱정하는 이들이 있을까 염려되어 말하지만, 당연히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성을 만나는 과정이 우선되었다.

이 여자는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내가 어떤 촉감을 좋아하는지가 자기 옷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이 되었고 계절의 변화나 새로운 장소를 소리로 전달해 주기 위해 남들이 사진기를 찰칵하는 시간에 녹음기를 들고 다녔다. 점자를 본 적도 없던 사람이 어느 틈에 나 모르게 우리 집의 반찬 그릇이며 비상 약통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고 ‘시각장애인 보행법’ 교재를 공부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반찬 위치를 시계방향으로 설명하고 납작한 접시에 나오는 음식은 오목한 그릇으로 바꿔 달라고 나보다 먼저 점원에게 요청했다. 화면해설 콘텐츠를 찾는 것도 시각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주변 환경을 지적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나보다 눈 멀쩡한 그녀가 먼저였다.

낯선 식당에 가도 휴지와 물은 내가 찾기 편한 자리에 놓였고 지나는 길의 간판들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해 주었다. 어느 틈에 내 세상은 장애가 없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늘 내게 팔 내어주고 걷는 게 힘들지는 않아? 다 설명하려면 목 아프지 않아?”라고 묻는 내게 “그게 왜 힘들어요? 다른 여자가 오빠 안내하다가 데려가 버릴까 봐 더 무서워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내 이상한 친구는 스스로가 시각장애인이 아니어서 내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조금 더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불편하다는 게 그 이유다. 내가 어찌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사람들이 종종 “내 눈 한쪽이라도 주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진짜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의심한 적이 많다. 그렇지만 이 사람이 말할 땐 당장 빼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오빠가 보이지 않으니까 내가 찾으면 되지!”

“오빠는 힘이 세니까 물건을 들고 난 글씨 읽으면 되지.”

“오빠는 계산 잘하니까 나 대신 계산하고 난 영어 잘하니까 영어 읽으면 되지.”

“만약 수술할 수 있다면 난 눈이 두 개니까 하나 오빠 주는 게 뭐가 어려워? 당연히 나눠 써야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진심임을 의심할 수조차 없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전갈 요리를 주식으로 택했다. 내가 맛있으면 되지 그 이상 무슨 고민이 필요하냐고 주장하는 그녀에게 난 매일매일 더 맛있어지는 최고의 전갈이 되기로 결심했다.

조금 다른 삶을 사는 나에게 세상에서 최고로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전갈을 좋아하는 그녀가 매일매일 맛있게 전갈을 먹을 수 있도록 또 내가 변치 않는 맛있는 전갈이 되도록 많은 이들의 응원을 부탁한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장애인에게 가능성 작긴 하지만 세상엔 이런 이상한 여자도 있다는 희망 섞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이상한 사람과 예쁜 가정을 바라는 다름 가진 이들을 나도 응원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승인
알림
662b6ee82bf9c@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