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차별의 기원(起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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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명은 차별의 기원은 밝혀냈지만 일상적인 여성·인종·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극복하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막연한 헛된 구호만을 외칠 뿐이다. 차별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회의 선의도 무책임한 기만일 뿐이다. Ⓒunsplash
▲우리 문명은 차별의 기원은 밝혀냈지만 일상적인 여성·인종·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극복하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는 막연한 헛된 구호만을 외칠 뿐이다. 차별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회의 선의도 무책임한 기만일 뿐이다. Ⓒunsplash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1884년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통해 여성 차별의 기원이 계급에서 비롯되었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엥겔스의 이러한 주장은 근대 문명을 접하지 않았던 북아메리카 이로쿼이족들의 일상을 관찰한 결과였다. 엥겔스는 이로쿼이족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그곳에서는 여성 차별적 상황을 발견하지 못했고, 사회적 계급 또한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서구사회는 생물학적으로 현재의 인간이 등장한 시기를 10만 년에서 20만 년 전 사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엥겔스는 이를 근거로 계급 없는 사회가 국가의 등장과 함께 계급 사회로 전환되었고 여성을 차별하는 형태의 가족도 등장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근대적 사회 계급과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에는 과격하고 황당하기까지 했던 엥겔스의 주장은 131년이 지난 2015년 콩고와 필리핀 지역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부족들을 관찰하고 연구했던 인류학자들에 의해 입증된다. 즉, “수렵채집 사회가 더 마초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시각”은 문명사회의 편견일 뿐, “농경이 시작돼 자원 축적이 가능해지고 나서야 불평등이 출현”했다는 것.

또 한 가지, 사회학자 진구섭은 <누가 백인인가?>에서 16세기 대항해 시대 백인들이 신대륙 원주민들을 착취하기 위한 명분으로 인종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머리카락 사이에 연필을 꽂아 통과하면 백인, 그렇지 못하면 유색인으로 구분하는 등 주먹구구식이었으며, 1930년 이후 인종차별을 받던 남유럽이나 동유럽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대거 편입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백인으로 편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구섭의 주장은 인종 구분은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 줄곧 변하는 가공물”이며, 지배집단의 특권과 권력 추구의 산물이자, 약자 억압의 이데올로기로 창작되었을 뿐, 생물학적으로 백인들의 DNA에 축적된 욕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 혹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향한 차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칼 닐슨의 <장애의 역사_김승섭 역>는 북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지역 언어가 2000개 넘어 다른 부족들과의 소통은 주로 수어를 사용했던 만큼 농인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예제 사회가 본격화되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능력 있는 몸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간 경계에서 밀려났고 급기야 장애를 가진 몸의 노예들은 ‘폐품 노예’로 불리며 헐값에 처분되거나 바다에 버려졌다는 것이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미국의 대법원은 장애를 가진 몸을 ‘퇴행적’인 몸이므로 강제 단종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구호가 공공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칼 닐슨은 결국 ‘능력 있는 몸’은 정치, 경제, 법, 문화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계화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능력주의를 뜻하는 ‘에이블리즘(Ableism, 비장애중심주의)’이 장애인 차별을 뜻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시대가 인류의 근원적인 불평등 기제인 여성·인종·장애 차별에 대한 기원은 용케 밝혀냈다고 치자. 하지만 그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 고전적인 불평등조차 극복하기는커녕 되레 여성·인종·장애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할 꼼수에 골몰한다. 계급(여성), 착취(인종), 능력주의(장애)라는 뚜렷한 차별의 기원들은 되레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을 우려하면서도 당사자를 배제한 채 여성의 출산 능력만을 강조하는 대책을 내놓거나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低賃) 고용을 법제화하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무려 10여 개가 넘는 장애인 관련 법들이 존재하지만 배제되고 거부당하며 거리로 쫓겨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차별은 소위 ‘차별의 정당한 사유(과도한 부담과 현저히 곤란한 사정)’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가끔 애써 연구한 엥겔스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쩌면 차별의 기원이 사회적 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이데올로기적 문제라기보다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공격함으로써 희열을 느끼고 자신의 물리적 우위를 확인하고 자위하는 인류의 못된 심성 때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장애를 가진 일상에 어지간히 이골이 난 요즘에는 불시에 노골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민낯 앞에서 분노 대신 체념이 앞선다. ‘능력 있는 몸’이 아닌 탓인 게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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