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 13명, 장애여성 일상 짓밟아… “경찰 부실수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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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여성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수년간 집단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관련해 27일 오후 2시, 장애인, 여성 등 시민사회 단체가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발달장애 여성 집단성폭력 피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달장애여성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수년간 집단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관련해 27일 오후 2시, 장애인, 여성 등 시민사회 단체가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발달장애 여성 집단성폭력 피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 장애인·여성단체, 전남경찰청에 항의.. 재조사 촉구
  • 수사단계서 성폭력처벌법 취지·피해지원 통보 등 무시
  • 댓글 등 2차 가해엄정 수사와 피해자 보호 나서야!
  • 피해자 가족 제발 도와달라호소

[더인디고 조성민]

“내가 다 말했어요. 몇 번이고 말했어요. 내가 그거 하기 싫어서 경운기에서 뛰어내려가지고 다쳤는데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해서 넘어졌다고 했는데, 그래도 경찰 가서 ○○병원 간것도 다 말하고, 딸이 다 냈는데 경찰이 무산시켜버렸어요. 인젠 지쳤어. 해바라기센터에서 말하고 경찰서에서 말했는데도 다 내가 잘못했대… 이젠 욕도 안나와 지쳤어. 벌 주세요”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여성장애인 A씨가 사례지원 담당자를 통해 전달한 입장문이다.

발달장애여성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수년간 집단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관련해, 수사기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 여성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발달장애 여성 집단성폭력 피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및 연대단체(공대위)’는 27일 오후 2시,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재조사와 피해 여성장애인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 경찰의 성폭력 가해자 1명만 기소… 나머지 ‘증거불충분’ 불송치 결정

해당 사건은 지난 1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방송에 따르면 전남 지역 한 마을 주민 13명이 A씨를 상대로 10여 년간 성폭력을 가해왔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 중 단 1명만 기소하고, 사망자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A씨 측은 지난해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지역 주민들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마을 주민들이 상당 기간 뇌경색 후유증이 있는 A씨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경찰은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혐의를 뒷받침할 구체적 정황이나 목격자 진술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지난 2월 증거불충분 등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현재 해당 사건은 A씨 가족이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황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리더라도 사건 관계인의 이의신청이 있으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검찰은 이 10명에 대해 직접 수사에 나설지, 보완 수사를 요구할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여성·공익법률 등 공대위 및 연대결성… 2차 가해와 수사단계 문제 지적

이에 대해 공대위는 “‘피해자와 그 가족은 개인정보가 노출될 것’이라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언론 고발까지 이르게 된 것은 ‘가해자들 처벌과 피해 회복을 위해 도움받을 곳이 언론밖에 없다는 막다른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점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처음부터 경찰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방송 이후에도 댓글 등을 통한 2차 가해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발달장애여성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수년간 집단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관련해 27일 오후 2시, 장애인, 여성 등 시민사회 단체가 전남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발달장애 여성 집단성폭력 피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달장애여성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수년간 집단성폭력 피해를 당한 것과 관련해 27일 오후 2시, 장애인, 여성 등 시민사회 단체가 전남경찰청 앞에서 ‘엄중한 수사와 피해자 보호 등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발달장애 여성 집단성폭력 피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공대위는 또한 경찰을 향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장애라는 취약성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한 성폭력처벌법 취지를 무시한 데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나 성폭력 상담소 등 관계기관 안내 등도 없었다”며 “이는 장애인 피해자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 데서 비롯됐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수사기관 진술, 이후 재 피해 예방을 위한 보호 등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학대 사실을 통보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수사기관 수사 실무에도 이 같은 내용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성폭력 상담소 등 관계기관을 안내하도록 했다.

더구나 방송에선 피해자 진술 분석관이 ‘장애로 인한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 피해자 진술에 대해 신빙성이 있다’고 판정했음에도 경찰은 이 역시 배척한 것으로 보도했다.

여성장애인의 다중적 차별과 성폭력 사건 특성 그대로 드러나!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공동대표는 더인디고와의 통화에서 “여성장애인은 ‘여성’과 ‘장애’라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제한 뒤, “항거할 수 없는 점 등을 이용해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폭력의 대상화가 되어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라며 “특히, 발달장애 여성들은 스스로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입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학대나 성폭력 가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이번 사건 역시 ‘가족 등 3자에 의해 피해 사실이 발견된 점’,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 점’, ‘가해자는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이고 장애 유형에서도 취약한 지적장애인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여성장애인의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또한 “사건단계부터 발달장애와 성폭력 피해 당사자를 조사하는 전문인력도 부족한 데다, 장애와 성인지감수성마저 없다 보니 남성경찰관을 배치하고, 전문기관에는 피해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며, “‘합의금을 노린다’는 등 피해자 가족에 대한 악의적 소문 등에 대해서도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 가족 측이 공대위에 전달한 입장문에 의하면 “가해자들은 합의금을 목적으로 이 모든 사실을 지어내고 거짓으로 신고해서 돈을 뜯어내려 한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 합의금을 요구한 적도 없고, 합의할 생각도 없다”며 “심지어 재판 중인 가해자는 ‘우발적’이라고 하지만, 발신자표시 제한으로 수십 차례 전화까지 했다. 또한 경찰조사에서도 엄마가 전화한 것은 단 한 건도 없고 가해자들이 전화한 기록만 나왔는데도 ‘증거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어 “지금까지 사과도 없이 오히려 엄마를 정신 이상한 사람이라며 모욕하고 헛소문을 내고 있다”며, 전남경찰청장을 향해 “이 사건을 다시 살펴봐 달라. 제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관련해 A씨 측은 정보통신방법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성폭력피해자 2차 피해 고소장’을 전남경찰서에 제출했다.

공대위, 기자회견과 경찰청 항의 방문 “2주 안에 답변 없으면, 재차 집회

이날 공대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성폭력처벌법 취지에 입각한 전면 재조사와 ▲지역사회에 만연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여성폭력방지법 제3조 ‘2차 피해’로 규정해 철저히 수사할 것과 ▲앞으로 모든 장애여성 집단 성폭행 등 중대 사건은 반드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에 학대 통보할 것 촉구했다.

또한 경찰청 관계자를 만나 이와 같은 요구 사안과 더불어 ▲장애인 대상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해 장애인성폭력 상담소와 실무 협의체 구성과 지원 매뉴얼 및 연계 방안을 마련하고, ▲A씨와 가족에 대한 2차 가해 고소 외에도 인지수사를 개시해 피해자 보호, ▲전남경찰청 예하 수사기관을 상대로 성인지감수성 및 장애인 학대 예방 실무 특별 교육 이수, ▲장애인 성범죄 사건 예방뿐 아니라 신고되지 않는 사건에 대해서도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는 등의 내용을 전달했다.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동행’의 이기림 활동가는 더인디고와의 통화에서 경찰 관계자들은 면담에서 ‘어려운 수사였다’ ‘여성경찰관이 부족하다’ 등의 변명을 늘어놨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경찰청장의 부재로 자치경찰부장과 여성청소년과장이 참석했다. 관련해 공대위는 해당 요구 사안에 대해 경찰이 2주 안에 공대위 측에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현재 재판 중인 가해자 한 명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달 2일로 예정돼 있어, 재판 결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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