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시각장애인이 카약을 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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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약을 타고 카리브해를 누비다. ⓒ안승준
▲ 카약을 타고 카리브해를 누비다. ⓒ안승준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카약을 경험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예약하거나 그도 아니면 지나가다 발견한 어느 물가의 카약을 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타면 된다.

나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카약을 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나 지나다 발견하고 시도하는 것까지는 별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적당한 금액 지불하면 탈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눈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그때부터 굉장한 용기와 끈기가 필요하다.

시력 상태는 어떠한지,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큰 수술의 경험은 없는지, 보호자는 동행하는지, 비슷한 경험이 전에 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한 이후라도 운이 좋아야 목숨 걸 각서 정도를 쓰고 나면 겨우 노를 젓고 배를 타는 경험이 가능하다.

“운이 좋다면”이라는 가벼운 전제조건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굉장하고 엄청난 운이 닿지 않는다면 단칼에 거절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겠다. 때로는 복잡한 법조문 공부하고 해외사례 찾아보고 다투기도 하고 읍소하기도 하지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완곡한 거절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장애는 정말 위험한 것인가라는 허탈한 자문을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에겐 너무나 대중화된 수상 레포츠이지만 장애 가진 이들에겐 특별한 이벤트나 복지관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용기 내고 다짐하고 끈질기게 부딪히면 어딘가에서 도전을 허락받기는 하겠지만 잠시 잠깐의 즐거운 경험을 위해 매번 투사가 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신혼여행지인 멕시코의 리조트에도 다양한 수상 레포츠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지만, 그런 연유로 인해 나에게 주어질 혜택은 아닐 거라는 체념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좋은 날 다투고 싶지도 않았고 복잡한 설명하면서 도전하기엔 시간이 아깝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짝도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할 수 있는 것들만 하면 되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오빠! 카약 한 번 타 보지 않을래? 저런 거 좋아하잖아”라고 권유할 때만 하더라도 난 그냥 괜찮다고 하고 이번에도 아쉬움을 꾹 누르고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짝의 의지는 생각보다 강했고 행동은 예상보다 빨랐다. 내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 주고 싶은 것 같았고 그 일이 엄청난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력이 좋지 않으시군요. 몸은 건강해 보이시니 내일 오전에 카약 담당하는 곳에 가서 한번 문의해 보세요.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는 안내센터 직원의 말은 나에겐 놀라운 것이었지만 전문가 아닌 이의 일반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직접 카약센터를 운영하는 담당자와의 대화에서도 안내센터 직원의 설명과 크게 달라진 기조를 느낄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으신다고요? 그럼 2인승을 같이 타시면 되죠. 혹시 여성분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면 저희 직원을 붙여드릴게요.”

멕시코 청년 올랜도와 에메랄드빛 카리브해 어느 깊은 곳에 배를 정박하고 있는 순간까지도 그 어떤 누구도 내게 보이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거나 탈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재미있지만 슬픈 사실은 난 실제로 위험하지 않았고, 나에게서 카약을 타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카약을 타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고 포즈를 취한 사람들ⓒ안승준
▲카약을 타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고 포즈를 취한 사람들ⓒ안승준

난 시키는 대로 노를 저을 수 있었고 생각보다 카약은 안정적인 배였고 혹시 물에 빠진다 하더라도 구명조끼를 입었으니 안전했고 무엇보다 다른 이들에 비해 특별히 내가 가진 불편함은 없었다.

눈이 보이는 것이 망망대해에 빠졌을 때 얼마나 더 유의미한 안전 수단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반복적으로 들은 설명처럼 내가 위험한 존재는 아니었다. 너무도 특별하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 시간 여의 카리브해 여행이 끝난 뒤 그들은 내게 남은 여행 일정을 물으며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다시 방문해 주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내가 카약을 타겠다고 마음먹고 접수하고 타고 내리는 순간까지 내겐 어떠한 특별한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았다.

한 명의 직원과 함께하긴 했지만, 그 또한 나의 장애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중 하나였다. 어떤 일은 나의 시력으로 인해 진정 불가능한 것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카약은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나를 지금까지 위험한 존재라고 단정했던 사람들의 판단은 오로지 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구라는 것이 한순간 밝혀졌다.

당연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카약을 타는 방법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말 쉬운 사실이지만 장애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되지 못한다. 내게 카약이라는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경험을 선물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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