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춘천은 가을에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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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강 ⓒ전윤선
▲ 북한강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춘천은 가을에도 봄. 불링불링한 가을햇살이 내리는 공지천에는 온화한 기온이 감싸고 그 볕을 따라 윤슬이 바람에 일렁인다. 춘천은 가을에도 봄 같은 날씨가 이어진다. 호수의 도시 젊음의 도시 춘천은 그래서 늘 사람들이 모여든다. 춘천에서는 북한강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하거나 끝내곤 한다. 휠체어 라이딩도 춘천해서 하기 좋은 코스다. 북한강 휠체어 라이딩은 소양강 스카이워크에서 시작했다. 소양강 스카이 워크는 열린 관광지여서 장애인 화장실, 무장애 테이블 등 접근성이 무난해 춘천 여행길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기 좋다.

스카이 워크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멈칫 해 잠시 숨을 고른다. 투명 강화유리 아래로 공지천 물이 흐르고 강물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여 아찔해 휠체어 조종기를 쥐고 있는 손끝은 가늘게 떨린다. 강물 위를 걷는 것 같은 이 아슬아슬함으로 포토존이 있는 저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아래를 볼수록 움직임이 둔해지고 침 넘김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용기를 내어 투명 강화유리가 조금 가려진 배관쪽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꾹 누르고 원형 광장 끝에 도달했다. 사방이 강화유리여서 공지천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아찔하다. 원형광장 사진 장소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다. 소양강 한가운데 붕어 조형물을 배경 삼아 인증 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나왔다.

▲소양강 스카이워크 ⓒ전윤선
▲소양강 스카이워크 ⓒ전윤선

스카이 워크에는 무장애 테이블과 장애인 화장실, 수직형 리프트도 마련돼 있어 예산은 이렇게 써야 효과적이라는 것이 보인다. 스카이 워크 옆에는 국민가요가 된 소양강 처녀 동상이 공지천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소양강 처녀 노래가 자꾸 입가에 맴돈다. 오른쪽으로 공지천을 끼고 강촌역까지 라이딩을 시작했다. 파란 호수 길을 따라 자전거도 휠체어도 기분 좋은 라이딩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나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춘천은 가을에도 봄을 맞다. 가을꽃은 한창이고 파란 하늘에도 하얀 뭉게구름 꽃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호수는 거울처럼 하늘을 그대로 복사해 붙였고 물새 몇 마리가 잔잔한 강물에 파장을 일으키며 먹이활동에 여념 없다. 바람은 선선하고 날씨는 쾌청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 좋다. 공지천 주변 들꽃에도 눈맞춤 하고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거미에게도 경쾌한 인사를 건넨다.

▲소양강 처녀 ⓒ전윤선
▲소양강 처녀 ⓒ전윤선
▲소양강 스카이워크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소양강 스카이워크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가다 보니 어느새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이다. 경사로가 잘 마련돼 있어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는 데 문제없다. 다만 기념관 문이 여닫이 유리문이어서 휠체어 발판으로 밀고 들어간다. 휠체어 탄 사람에게 여닫이문은 고역일 때가 종종 있다. 휠체어 발판으로도 밀기조차 어려울 때는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할 때 같이 들어가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 들어간다.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기념관 안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사진과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에티오피아 군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를 거처 한국전쟁이 시작돼 모든 것이 파괴돼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젠 에티오피아를 돕는 선진국이 됐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은 에티오피아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기념관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갔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맛과 향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카페는 계단 몇 개를 내려가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에티오피아 커피 맛은 패스했다.

공지천을 따라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의암호 공원을 지나는데 한 무리의 장애인 여행객이 공원 여기저기서 공지천을 산책하거나 누군가와 인터뷰하고 있다. 아마도 장애인 기관에서 단체 여행을 온 것 같다. 여행하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근사한 풍경을 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장애인은 살면서 많은 것에서 제외되고 소외된다. 학령기 때는 장애를 이유로 현장 학습이나 소풍,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 학습을 제한해 여행의 기술을 배우는 데 제외한다. 중도에 장애가 생겼어도 마찬가지다. 장애 상태와 유형에 맞게 여행의 기술을 새로 배워야 하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은 허접하고 접근성이 가로막기도 한다. 게다가 제대로 된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해 여행의 권리에서 늘 소외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고행이 두려워 망설인다. 누구나 자연스러운 여행 활동이 장애인에게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공원을 지나고 공지천을 따라 데크 길로 다시 휠 라이딩 한다. 데크 길에는 산책 나온 반려견이 반려인과 함께 천천히 산책하고 있다. 의암호 데크 길에는 멈추지 않는 한 꿈은 계속된다는 문인의 길이 있다. 의암호 문인의 길은 마음에 담고 싶은 좋은 글귀가 길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쓰여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실패를 하게 된다”는 글이 마음에 들어온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위험하니까 해주는 데로만 받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할 때가 많다. 장애인도 실패를 경험하며 성장해 나가야 한다. 실패는 실수가 잦아든다.

▲KT상상마당 ⓒ전윤선
▲KT상상마당 ⓒ전윤선

의암호를 따라 라이딩 하다 보면 KT 상상마당이 나온다. 상상마당은 문화시설로, 공연이 상시적으로 개최되고 카페와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상상 마당에서 화장실 볼일도 보고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몸속에 가득 찬 근심을 비워내니 날아갈 것 같다. 새털처럼 가벼워 진 몸으로 카페에서 따스하고 달콤한 음료로 당 충전을 해준다. 가을볕이 따사롭게 내리는 상상마당 잔디밭에 노란 우산이 조화롭다. 파란 공지천은 상당마당과 합이 잘 맞는 팀 같다. 이제 쉬었으니 다시 라이딩을 시작해 볼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가다 보니 공지천 한가운데 섬이 있다. 의암호 나들 길은 서면 금산리에서 송암동에 이르는 구간이다. 이 구간은 호수 위에 비친 하늘이 하도 예뻐서 하늘 길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중도’ 배터를 호위하는 바위 절벽과 마주한 바위 절벽은 ‘봉황대’이다. 봉황대에 오르면 의암호와 중도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 춘천게이블카 ⓒ전윤선
▲ 춘천게이블카 ⓒ전윤선

봉황대를 지나면 춘천의 핫플레이스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춘천에 왔으니 케이블카를 타봐야지. 케이블카 승강장에도 장애인 화장실과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다. 그런데 정작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은 승강장에 비치된 수동휠체어로 바꿔 타야만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휠체어는 장애 상태에 맞게 세팅돼 있어 낯선 휠체어로 바꿔 타면 몸의 균형이 깨져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이젠 곤도라식 케이블카도 휠체어를 바꿔 타지 않아도 캐빈에 탈 수 있게 기술적 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해외에서는 곤도라식 캐빈이라고 해도 휠체어를 바꿔타는 일은 없다. 국내에서도 전동휠체어를 탄 관람객도 캐빈을 선택해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다. 더러는 춘천처럼 지자체와 케이블카 업체에서 안전을 이유로 자신들이 원하는 휠체어로 바꿔 타야만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고 강요한다.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케이블카의 안전도 중요하고 휠체어 탄 장애인의 신체적 안전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해외처럼 자신의 휠체어로도 케이블카에 탑승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안도 없이 제약만 한다면 전동휠체어 사용인은 평생토록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다.

▲킹카누(수동휠체어탑승가능) ⓒ전윤선
▲킹카누(수동휠체어탑승가능) ⓒ전윤선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춘천이 자랑하는 국내 최초 킹카누 승선장이다. 킹카누는 열린관광지로 선정되면서 제작된 물놀이 시설이다. 일반 카누와 크기면에서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크다. 수동휠체어 탄 승객 3명까지 카누에 탈 수 있지만 역시나 전동 휠체어에서 수동휠체어로 갈아타야 해서 패스.

▲북한강 인어 ⓒ전윤선
▲북한강 인어 ⓒ전윤선

신나게 달리다 보니 멀리 인어 조각상이 강물위 바위에 앉아 있다. 인어공주를 카메라 속에 밀어 넣고 조금 가면 의암호 스카이 워크가 나온다. 스카이 워크는 개방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으로 기약하고 강촌역 방향으로 냅다 달려본다. 달리고 달려 다다른 곳은 김유정 문인비가 라이딩 길손을 마중한다. 춘천은 문인이 많은 고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강촌 방향으로 다시 달린다. 북한강을 품고 달리는 동안 햇살의 온도가 조금씩 떨어진다. 스치는 풍경은 가을빛이 반사돼 영롱하고 해님도 퇴근을 서두른다.

▲북한강 자전거길 ⓒ전윤선
▲북한강 자전거길 ⓒ전윤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는 책을 쓰기 위해 한 장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방문한다고 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처음 방문은 관광 자원과 접근성을 모니터링으로 데이터를 취합하고 동선을 체크한다. 두 번째 방문도 N 번째 방문도 그동안 변화가 있나 다시 체크하고 동선을 재정비한다. 여행지 모니터링 결과물을 토대로 지자체에 민원 제기하고 언론과 SNS로 공론화해 여론을 형성하고 제도 개선까지 많은 일을 해야만 무장애 여행지로 아주 느리게 변화가 보인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구멍은 여전하다. 물 흐르듯 소통의 흐름이 장벽 없이 자연스러워지는 그날까지 무장애 여행 활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자립 여행이 고립 여행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강촌역까지 휠 라이딩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춘천역에서 소양강 스카이워크까지 1킬로 남짓, 소양강 스카이 워크에서 공지천을 끼고 강촌역까지, 북한강 자전거 길
  • 접근할 수 있는 식당: 춘천역 앞 닭갈비집 다수, 소양강 스카이 워크 앞 다수, 북한강 자전거길 중간 상상마당 카페
  • 접근 가능한 화장실: 춘천역, KT 상상마당, 춘천 케이블카 승강장, 킹카누 승선장 앞, 강촌역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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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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