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서울이 궁금해,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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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야외 전시장 전차 ©전윤선
▲서울역사박물관 야외 전시장 전차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경기도 일부가 수도인 서울로 편입하네 마네 하며 논쟁 중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이기도 하고 6백 년 넘게 역사, 문화, 경제 등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서울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서울이 어떻게 수도가 됐는지 궁금해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았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수도를 한양(서울)으로 옮겼다. 이후 쭉 한양, 한성, 경성이라고 불렸다. 한양은 한강의 북쪽을 의미하고, 한성은 한양과 성곽을 합친 말로 도읍을 만들 때는 성곽을 쌓아 도성의 의미가 강조된 말이다. 한양은 성 안과 성 밖 십리까지의 땅을 일컫는다. 이때 성 밖 십 리에서는 나무를 베거나 개간, 묘지를 쓰는 일도 금지됐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고 서울을 경기도로 강제로 합치면서 수도의 역할을 축소했다. 더 이상 수도인 한성부를 그대로 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도 경성(서울)은 수도 역할과 위상을 그대로 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서울, 경성, 한성을 공문서마다 혼합해서 사용하다가 경기도에서 서울을 분리하면서 수도인 서울특별시가 됐다. 서울은 도성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다.

천만 명의 생각이 공존하는 서울. 명품 도시 서울은 K-관광의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자원이 가득하다. 서울을 깊이 있게 여행하려면 서울의 면모를 자세히 알아야 백 배 더 즐거운 여행이 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서울역사박물관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한 달 전, 계절의 여왕 오월에 서울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는 박물관 건립은 시대적 요구의 숙원이었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유물 기증은 박물관의 동력이 되었다. 먼저 박물관 야외 전시장으로 갔다. 야외 전시장은 다양한 전시물이 이목을 끈다. 조선 총독부 철거 부재와 홍제고가 철거 부재 등 서울의 핵심적인 변천사를 전시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전차가 다녔던 흔적도 금세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대한제국은 전기를 도입하여 서대문에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8 km 단선궤도 및 전차선을 설치하였고 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70년 동안 서울 시내에서 운행됐다.

2층의 박물관은 건물 편의시설이 양호하다. 먼저 1층 실내로 들어서면 역사 속 서울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서울의 얼이 벽면 가득하다. 서울의 얼은 19세기 지도인 경‧강‧부‧임‧진도와 유교의 5개 덕목인 인의예지신으로 상징화한 거대한 그림이다. 서울의 얼 벽화는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숨이 멎을 것 같다. 로비에는 ‘이산가족의 날’ 국가 기념일 지정을 기념하는 다시 만날 그날까지를 전시하고 있어 분단의 아픔이 그대로 투영된다. 기획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기획 전시실에는 망우동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망우동 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기획 전시 망우동 사람들 ©전윤선
▲기획 전시 망우동 사람들 ©전윤선

망우동은 서울 동북쪽에 있어 서울과 경기, 강원을 오가는 교통의 사통팔달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조상의 무덤을 오가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다니던 길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 철도와 공동묘지가 들어섰고 1963년 서울시로 편입됐다. 망우는 근심을 잊는다는 뜻으로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죽어서 묻힐 무덤의 위치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근심이 사라졌다며 지은 지명이다. 망우동 공동묘지는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어 유명 인물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유관순, 한용운, 안창호 등 애국지사 다수와 어린이의 대통령 방정환, 조선의 명온공주, 세월이 가면 시인 박인환 등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있다.

2층 상설전시장으로 올라갔다. 상설전시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4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전시 중이다. 첫 번째 전시는 ‘조선시대의 서울 5백년 왕도를 세우다’이다. 태조 이성계는 서울을 수도로 정하고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종묘와 사직, 궁궐이 들어섰고 비로소 임금의 교화와 정령이 나가며 왕도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렇게 서울은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조선의 수도였다.

두 번째 전시는 1863~1910년 개항과 대한제국기의 서울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조선 연안 곳곳에 서양 선박이 출몰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군함이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 앞까지 와 서울을 위협할 정도였다. 외세의 압력이 현실화됨으로 조선 내부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었다. 진보적인 학자들은 서양 서적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과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과학기술과 천문, 지리, 산업 등 현실 문제에 눈을 돌렸다. 개항 이후 조선에는 청국 상인들과 일본 상인, 서양 상인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양품이라는 서양 잡화가 유입됐다. 조선 상인들은 이에 반발해 외국 상인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라고 요구하며 장사를 중단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지만 몰아치는 세계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식의 변화는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전시다.

▲최초의 태극기 ©전윤선
▲최초의 태극기 ©전윤선

한편 고종은 조선이 근대화 독립 국가로서 갖춰야 할 요건을 최대한 강구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중 하나가 태극기의 제정이었고 태극기는 1882년 6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에서 처음 사용됐다. 개화기 때 서울의 풍경을 3D 영상으로 만들어 터치하면 전차가 운행하고 사람들은 서울 시내 한복판을 오간다. 당시 정동은 외국인 거리이었기도 하다. 외국인들의 통행이 빈번해지자 손탁 호텔이 들어섰고 상점들이 줄지어 개업했다. 서울을 여행한 외국인 중 로써티와, 비숍, 게일 등은 정동의 모습을 담은 책을 출판해 서울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이렇게 정동지역은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한 무대가 됐고 서울은 짧은 기간 안에 다른 근대국가 도시들과 어깨를 견줄 만큼 근대 색이 짙은 곳으로 변모했다. 지금도 정동에는 미국 대사관저, 영국 대사관, 캐나다 대사관 등이 있어 개화기 대한제국 역사 여행의 성지이기도 하다.

다음 전시는 1910~1945년 일제강점기의 서울이다. 1910년 8월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해 조선이라 칭하고 일본 왕의 직속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총독은 조선 안에서 행정, 군사, 입법, 사법의 모든 권한을 손아귀에 넣었다. 서울은 명목상 일본의 지방 도시이었지만 식민 통치의 중추기관과 주요 기업, 교육기관 문화시설이 모여 있어 실질적으로 조선의 수도이었다. 일제 강점기의 서울 인구 중 20%는 일본인이었고 빠르게 근대 도시로 변했지만 식민지 도시의 근대성은 한국인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포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을 자국 영토에 편입시켜 영구히 지배하는 한편 온갖 인권 유린과 수탈로 해방 전까지 대륙침략의 발판으로 이용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명언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1975년 잠실주공아파트 36평 ©전윤선
▲1975년 잠실주공아파트 36평 ©전윤선

대한민국 수도 서울. 1945~2010년은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한반도 허리 수도 서울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하계, 동계 두 번의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60년대부터 70년대 서울의 주택 공급은 폭증하는 인구 수를 따라잡지 못해 주택공급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었다. 국내 최초 아파트였던 마포 아파트의 성공 이후 아파트가 주택 부족의 해결책으로 급부상해 아파트 인생이 되어갔다.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중‧상류층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단지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고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 반포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전시관에는 아파트 모형을 반을 잘라 전시하여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형 속 아파트 공간은 비슷한 가구 배치로 비슷하게 생활한다. 좁은 서울 땅에 많은 사람의 주거 해결은 아파트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지만 부실 공사로 아파트가 무너진 곳도 있다. 지금도 여기저기 순살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있다. 아파트의 편리함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선호하는 주거 환경이다. 주거약자인 장애인이 아파트를 선호해 순서가 오기까지 입주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임대아파트 등은 주거 취약계층이 모여 살아 장애인 주차장이 부족해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장애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장애인 주차장도 거주자 수만큼 늘려야 하지만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문득, 백 년 후 지금의 아파트가 조선시대 건축물처럼 오래 남아 문화유산으로 활용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1층로비 전동휠급속충전기 ©전윤선
▲1층로비 전동휠급속충전기 ©전윤선

N층에는 서울의 화려한 밤 풍경을 볼 수 있는 도시모형 영상관이다. 도시모형 영상관은 휠체어를 탄 관람객도 N층으로 접근할 수 있게 자연스러운 경사로가 마련돼 있다. 도시 모형전시관은 서울 전체를 밤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조명 빛으로 가득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휠체어를 탄 관람객도 배제되는 곳 없이 접근성이 잘 되어 있다. 외국인 여행객을 초대해 국내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인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이 자주 등장한다.

겨울철 여행은 여러 가지 고려할 것이 더 많아진다. 휠체어 배터리도 점검하고, 바퀴와 조정기, 방한복까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겨울 야외 여행은 낭만도 얼어 죽는다. 안전하고 따스한 실내 여행지에서 지적 사치를 채워 보는 것도 무장애 여행의 전략이다.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 짧은 생은 찰나이기에 아름답고 역사는 시간의 연속이어서 경이롭다. 삶과 역사는 예측이 안 되는 것이어서 여행의 묘미가 가증된다.

  •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5호선 서대문역, 광화문역,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 접근가능한 화장실: 서울역사 박물관 내 다수
  • 접근가능한 식당: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 아띠 식당가
▲1층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1층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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