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x>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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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과 동전이 저울 위에 있다. ⓒunsplash
▲마늘과 동전이 저울 위에 있다.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을 향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바우처 택시의 요금체계가 최근 변경되었다. 전에도 할인해 주는 폭이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정말 부담 없이 택시를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파격적 혜택이라 느낄만하다.

시간 정산이 없으니 차가 밀려도 걱정 없고 일반택시를 타는 것이니 가까운 시외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한강을 건너서 꽤 멀리 왔다고 생각해도 5천 원이 넘지 않는 요금을 보면 우리나라 복지 중에도 몇몇 것들은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제도가 생겨나고 규칙이 변하는 중인지라 예상 못 한 불편함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무슨 시스템의 오류인지는 몰라도 요금 정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과도하게 비싼 금액이 청구되기도 하고 반대로 말도 안 되게 싼 영수증이 출력되기도 한다. 기사님들은 기사님들대로 세세한 설명 없이 시작된 제도 때문에 나름의 고충이 있으신 듯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여러 불만을 접하면서 ‘속상하겠네!’라든가 ‘제도 실행이 너무 급하게 이루어졌네’라는 정도의 조용한 동의를 하고 있긴 했지만 자기 일이라 체감하지 못하고 있던 오늘 아침 드디어 내게도 소문으로만 듣던 사고 상황이 발생했다.

비도 오고 짐도 많은 출근길이라 모처럼 택시를 부르고 편안한 출근길 드라이브를 즐겼다. 이른 아침부터 수업이 있는 요일이어서 조금 서두르며 수업을 준비하는데 언뜻 소리 나는 카드 알림음의 액수가 좀 이상했다. 2천 원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만 단위의 숫자가 들렸다. 한 글자씩 다시 확인해도 만원 정도의 금액이 추가로 지불된 결과가 변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인 적용이 전혀 되지 않은 것이었다.

기사님의 실수인지 시스템 오류인지 나의 실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난 지불하지 않아도 될 만 원을 순간적으로 지출했다. 큰돈이라 여긴다면 큰돈일 수도 있고 작은 돈이라 여긴다면 작은 돈일 수도 있겠지만 어처구니없이 날아가 버린 그 돈은 그 순간 내겐 너무나 큰 손해라 여겨졌다.

‘고객센터에 연락해야 하나?’

‘시청 민원과에 전화해야 하나?’

‘’택시 기사님께 연락을 드려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최근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글들을 참고하면 그 어떤 방법도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5분 앞으로 다가온 수업 시간도 내가 당장은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박했다. 내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걱정하고 억울해할 것인가 아니면 쿨하게 잊고 할 일을 하느냐로 단순하게 압축되었다.

선택지는 두 개였지만 내가 골라야 하는 것은 얼른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혼란스러운 맘을 단번에 진정시킨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려운 일임에 분명했지만 만 원의 손해를 되돌리려는 확신 없는 노력을 하느라 학생들 가르쳐야 할 수업을 망칠 수는 없었다.

내게 주어진 한 시간 수업의 가치는 어떻게 생각해도 만 원보다는 크다. 한 시간 정도의 노력으로 잃어버린 돈을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게 추가의 손해를 안겨주는 일이다. 만약 한 시간을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여겨진다면 그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손해만 더 키워가는 시간이 된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로 손해를 키우는 일을 멈추는 것이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이후 일정도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무사히 마쳤다. 당황스럽고 억울한 일로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간단한 부등식을 생각해야 한다.

꼭 가지고 나와야 할 물건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면 되돌아가는 것과 새로 같은 물건을 사는 행위 중 어떤 것이 덜 손해인지 비교하면 된다.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면 더 큰 노력을 기울여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빠른 포기를 할 것인지의 가치를 비교하면 된다. 갑자기 장애를 얻게 되었다면 장애를 비장애의 상태로 되돌리는 노력을 할 것인지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최선의 삶을 찾을 것인지 비교하면 된다.

살면서 모든 손해를 피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라도 손해라 느껴진다면 부등식을 한 번만 떠올려 보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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