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내가 어릴 적엔 심심치 않게 정전을 경험했다. 미리 예견되는 일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는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드문 일이 아니었으므로 초를 찾고 두꺼비집을 열고 이웃집의 사정을 살피는 어른들의 행동에서 큰 당황스러움이나 어려움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겐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이었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찾을 수 없었고 물 한 모금 마시러 가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무섭고 두렵고 막막했다. 부랴부랴 아버지가 찾으신 촛불이라도 켜지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작은 불빛으로 마음의 불안함이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눈앞은 캄캄했고 이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정전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다행히 그 상황은 아주 길게 지속되지는 않았다. 오래전 일이라 뭐가 먼저였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다시 들리고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날 때쯤 형광등도 껌뻑거리며 다시 환한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아 하던 다른 어른들의 심정도 사실은 나와 비슷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이 켜질 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우리 집도 그랬지만 골목에 나와 있던 다른 어른들도 그랬다.
불이 켜지고 찬찬히 바라보는 내 앞은 어둡기 전의 상황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전에도 그랬겠지만 어두웠을 때도 별다른 것은 없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을 뿐 눈앞의 것이 없어지거나 변한 것은 아니었다. 장난감도 음료수도 화장실도 그대로였다. 내 눈앞이 어두워졌을 뿐 난 놀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도 있었다.
실제로 조금 더 자란 어느 날부터인가는 갑자기 불이 꺼지더라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전기가 끊어지는 것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더듬어서 물건도 찾고 해야 할 일을 하기도 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냥 눈앞만 캄캄했다.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환호를 지르긴 했지만, 정전이 무서웠다기보다는 그냥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했을 뿐이다. 처음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게 되었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눈앞이 캄캄했다. 모든 게 없어진 것만 같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다. 빨리 불이 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전과는 다르게 내 앞에 불이 다시 켜지지는 않았지만, 정전의 경험 덕분인지 캄캄해지는 것이 모든 것을 없어지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알았다. 밝았던 세상이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건 내게 낯선 풍경이었을 뿐 크게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장난감도 만지고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당연히 갈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그전에 하던 대부분의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마주한 상황이 단지 눈앞만 캄캄해진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큰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한다. 처음 정전을 경험했던 어린 나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예상 못 한 사건을 무섭고 두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래지 않아 다시 불이 켜지기도 하고 다시 켜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그대로 내 주위에 존재한다.
단지 눈앞만 캄캄해졌을 뿐이다. 늘 하던 대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더인디고 THE 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