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병원이 아닌 당사자단체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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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집)이 밀접해 있는 모습 ⓒ픽사베이
▲건물(집)이 밀접해 있는 모습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누구나 병이 들면 병원에 간다. 신체건강이 아니라 정신건강이 악화하면 정신과나 정신병동에 간다. 사람이 병들면 병원에 가는 것은 상식이다.

애석하게도, 정신장애인에게 그 말은 당연한 상식이 아니다. 어떤 정신장애인은 병원을 제 발로 찾지 않는다. 그러다 끝내는 악화하여 강제입원을 경험한다. 의료계는 “정신질환자는 그 특성상 병식(insight)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기 때문에 강제입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가족단체는 강제입원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현 시스템이 문제라면서 입원의 적합성 여부를 판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입원제가 올바르게 시행만 된다면 어느 정도는 정답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왜 당사자는 병원에 찾지 않는가? 당사자가 병원과 의료진을 불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다.

필자는 강제입원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원의 기억은 나에게 좋지 못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자살 시도 후의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대학병원은 시설도 좋고 동료 간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명 자의입원이라고 알고 왔는데, 사실은 동의입원이었다. 의료진이 퇴원 요청을 거부하면 보호입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중요한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절차보조(입원 상황에 놓인 당사자를 지원하는 일)가 낯선 개념이었다. 당사자 자신이 입원 동의서에 직접 서명했더라도 절차보조와 쉬운 설명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온전한 동의를 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다른 당사자 A씨는 중증 정신장애인이다. 그는 채식인이다. 육류와 유제품, 꿀이 들어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A씨가 입원했던 병원은 채식인이 A씨 혼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채식 병원식을 제공받지 못했다. 육식이 나오는 날에는 그는 꼼짝없이 굶거나, 배식원의 호의에 기대야 했다. 배식원이 육류를 빼준다면 그나마 배를 채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식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굶주려야 했다. 그는 최근 급성기가 심하게 찾아왔다.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 생활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했지만, 병원에서는 채식 급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게 큰 이유였다.

마침 여러 당사자단체가 당사자를 위한 단기 쉼터를 개소하였다. 그는 이동과 생활, 식사가 자유로운 당사자 쉼터에 입소했다. 채식 식사를 하고, 동료상담가의 지원을 받고 무사히 회복하여 퇴소할 수 있었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라 가끔 위기가 다시 찾아오기도 했지만, 병원보다는 당사자 쉼터를 다시 찾았다.

두 당사자의 사례에서,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병원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한다고 보기 어렵다.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달라는 뜻이 아니다. 무작정 퇴원시켜달라는 뜻도 아니다. 정신장애 당사자인 필자의 바람은 입원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직접 동의할 수 있게끔 쉬우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는 것과 당사자의 입장을 잘 아는 동료지원가가 당사자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을 체포할 때도 미란다 원칙을 사전에 고지하게 되어 있다. 범죄자에게도 지켜지는 당연한 권리를 정신장애인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조리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병원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장애인 시설과도 비슷한 부분이다. 사회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만큼 병원에도 다양한 당사자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병원은 이들의 다양성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채식 급식은 배부른 반찬 투정이 아니다. 육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채식 급식을 먹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은 몸이 건강한 사람이니 특별한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무고한 정신장애인이 건강을 위협받을 수 있다.

성소수자 정신장애인을 받을 준비는 얼마나 되어 있는가? 트랜스젠더 정신장애인은 어느 병동, 어느 화장실에 가야 하는가? 기존의 규범적 가족관계가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이 입원 동의서에 서명하겠다고 하면 입원을 받아들일 것인가?

한국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무종교나 개신교 외에 다른 종교인에 대한 배려는 되어 있는가? 중복장애인은 고려되고 있는가? 휠체어를 사용하는 정신장애인이나, 농인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인 정신장애인은 필요한 보조를 받을 수 있는가? 반면, 당사자단체가 운영하는 쉼터는 그러한 배려를 최대한 하고 있다. 휠체어 접근성 등 미흡한 면도 분명히 있지만, 큰 비용이 들지 않는 부분에서는 할 수 있는 한 당사자의 의사에 맞추려고 하고 있으며, 이용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려고 하고 있다.

필자는 A씨와 함께 당사자 쉼터를 잠시 이용했는데, 나도 급성기가 온다면 병원보다는 당사자 쉼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일 병원이 당사자단체를 따라 사전에 권리와 의무에 대해 충분히 고지하고, 다양성을 존중한다면 병원에 스스로 입원하는 당사자도 많아질지도 모른다. 강제입원으로 인한 갈등과 트라우마도 조금은 잠잠해질 수도 있겠다. 당사자 활동가와 가족 활동가의 대립도 줄어들 것이다.

정신장애인 이슈가 정신장애인만이 속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쉬운 설명을 하지 않거나, 다른 소수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소수자성은 중첩되고, 다른 소수자를 겸한 정신장애인이 배려받지 못한다면 결국 정신장애인 전체가 배려받을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사자단체가 다양성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은 상당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사자만의 당사자주의가 아닌 모두를 위한 당사자주의로 변화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모든 당사자를 위해 필요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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