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정의 정정당당] 당사자 활동가와 가족 활동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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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과 노란색의 같은 운동화 ⓒ언스플래쉬
▲빨간색과 노란색의 같은 운동화 ⓒ언스플래쉬

[더인디고=조미정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조미정 더인디고 집필위원

집필에 대한 갈망으로 ‘더인디고’에 연재 제안서를 내고 주제를 ‘정신적 장애인의 당찬 당사자주의(정정당당)’로 잡았다. 나는 정신적 장애인-더 정확히는 등록 정신장애인과 미등록 자폐인-이었고, 당사자주의는 요즘 나의 ‘제한된 관심사’였다. 나는 틈날 때마다 당사자주의에 대해 생각하기에 바빴다.

그런데도 나는 이 시리즈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만큼 당사자주의는 어려운 주제이다. 오히려 당사자주의를 한두 편의 짧은 글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단지 좋아하고 관심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운 주제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내가 오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나는 편집부와 독자들에게 충실한 글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려서 취재에 나섰다. 당사자주의를 알려면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인 가족 활동가의 사상을 알아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행히 상대방은 흔쾌히 수락해주셨다.

내가 인터뷰를 요청한 상대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필자가 선택한 취재원은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사외이사이자, ‘에이블뉴스’의 1년 차 칼럼니스트인 김영희 씨. 그는 가족협회에서 정책위원장을 맡고 여러 학술행사, 기자회견 심지어는 국정감사에까지 참석하여 증언할 만큼 열과 성을 다하는 가족 활동가이다. 반면, ‘에이블뉴스’에 조현병 당사자는 다른 정신장애인보다 범죄 확률이 높다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하여 많은 당사자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당사자계에서 김영희 씨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은 본인도, 필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2년 차 칼럼니스트라지만 경력이 짧은 내가 너무 어려운 취재원을 고른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어떻게 하면 ‘중립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김영희 씨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당사자주의에 관해 물으니, 그는 토론회장에 있을 때처럼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김영희 칼럼니스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관심사는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였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제40조(보호의무자의 의무) ①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중략) ③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정신질환자의 재산상의 이익 등 권리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 제도는 정신장애인 부양의 부담을 가족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가족이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하게 해 당사자와 가족의 대립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가족단체는 물론이고, 당사자단체, 의료계, 법조계까지 정신건강에 관련된 모든 집단이 입을 모아 반대하는 독소조항이다. 그 제도에 반대하는 점은 그와 나의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이었다.

김영희 씨는 모든 비극이 보호의무자 제도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면 당사자단체가 주장하는 커뮤니티 케어나 동료지원가 제도 등 다양한 정책이 제대로 흐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법입원제도로 흘러갔다. 사법입원 제도는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 여부를 가족이 아닌 법원이 결정하는 제도이다. 그가 속한 가족협회는 더욱 넓은 범위의 제도까지 포괄하는 (준)사법입원제를 지지한다.

나는 사실 사법입원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도의 취지에 맞게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맞게 잘 운영하려고 해도, 판사의 편견이 개입할 우려도 있고, 격무로 인해 안건을 세심하게 검토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많은 당사자가 사법입원제도를 환자를 마음대로 잡아 가두는 제도라고 오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준)사법입원제를 옹호하는 것은 환자의 발언권을 위함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발언권이 보장된다면 굳이 사법입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 말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다소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을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 자리는 김영희 씨의 생각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잠시나마 내 생각의 한 편을 그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김영희 씨는 당사자주의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들려주었다. 이 지면이 인터뷰 기사가 아니고, 김영희 씨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적거나 일방적으로 편을 들 수는 없기에 모두 소개할 수는 없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는 나이보다 젊은 열정이 있었다. 비록 가족단체와의 입장 차에 따른 의구심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속내를 알 수 없던 김영희 씨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공격적인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가족사도 알게 되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 카페로 자리를 옮겨 취미 이야기, 망상 이야기, 칼럼 이야기를 하다가 귀갓길에 올랐다.

어려운 인터뷰였다. 귀갓길에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당사자와 가족 중 한쪽 편만을 들고 싶지도 않았다. 자칫하면 취재원의 발언만 기계적으로 받아적거나 글이 건조해지기 쉬웠다.

문득 김영희 씨의 말이 생각났다. 당사자라고 해도 다른 집단과 너무 싸우지는 말라는 당부가 생각났다. 의사 집단이라고 해서 항상 같을 수는 없다는 발언도 함께 떠올랐다. 왜 우리는 친구가 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친구 사이라고 할지라도 이슈에 따라 한참을 싸우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다가오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 편 아니면 적, 당사자 아니면 비당사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비당사자와 연대할 때는 연대하고 생각이 다를 때는 비판하자고 칼럼을 썼던 나조차 그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흑백논리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당사자 활동가와 가족 활동가는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항상 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 사람 글만 보면 화가 난다고 동료 당사자가 말하던 그 사람이, 모니터 바깥에서는 당사자와 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부조리함을 겪고 슬퍼하고 그러면서 기뻐하고 열심히 살아가기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나의 당사자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당사자가 말하는 당사자주의는 장애학이라는 학문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당사자는 바로 그 ‘무언가’로 말해야 한다. 기준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통계보다는, 날카롭기만 한 이성보다는, 같은 사람에게 와닿을 수 있는 감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번 시리즈의 방향성을 비로소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가 직접 느끼는 당사자주의. 학문으로 말하는 당사자주의가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생각하고 재정의하는 당사자주의가 독자들도 원하고 나도 가장 자신 있는 소재다.

이번 인터뷰는 오만과 흑백논리에 빠진 나라는 활동가를 제대로 혼내준 인터뷰였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영희 칼럼니스트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정신적 장애인의 당사자주의는 아직 미약하다. 정신적 장애인이 정말 당찬 당사자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미약한 당사자주의가 창대해질 수 있도록 자그마한 글을 건넨다.
승인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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