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어떤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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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이를 외면하며 지나치고 있다. ©김소하 작가
▲중간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이를 외면하며 지나치고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 1901~1978)는 강연 중 한 학생에게 “인류 문명의 첫 번째 징조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 학생은 낚싯바늘이나 도끼 같은 도구를 생각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드가 약 1만 5천 년 전 부러졌다가 치료된 사람의 넓적다리뼈를 문명의 시작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으로 넓적다리뼈는 무릎과 고관절을 연결해주는 뼈인데, 우리가 허벅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람 몸속에는 200여 개의 뼈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뼈이다. 크기만큼 회복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6주 이상 걸린다.

원시시대에 이렇게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죽은 상태’와 같다. 움직일 수 없다면 사냥과 채집을 할 수 없고, 야생동물이나 자연재해를 만나도 피할 수 없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각별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데, 뼈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기간 동안 안전한 곳에서 음식을 먹으며 치료될 때까지 누군가 돌보아 주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전체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음에도 ‘다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돌본 것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과 같은 진화론에 반대되는 것이다.

마거릿 미드는 바로 이점에 주목했다. 인류 문명의 시초를 뛰어난 육체적 능력이나 훌륭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한 ‘돌봄’과 ‘지원’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돌봄’과 ‘지원’을 문명의 기초로 삼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보았다. 그 질문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이는 장애인이 의사를 직접 선택하여 만성질환이나 장애 등 건강 상태를 지속해서 관리받도록 하는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이하 주치의제도)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1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주치의제도 대상을 장애인복지법상 ‘심한 장애’에서 ‘모든 장애’로 확대하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건강권법)’ 일부 개정령안이 통과되었다.

주요 내용은 건강검진 기관으로 지정받은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장애인건강검진기관’으로 ‘당연 지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30개소에 불과했던 장애인건강검진기관이 80개소가 늘어나 110개소가 되며,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시도별 1개소 이상 지정되는 것이다. 아울러 연 18회였던 방문서비스를 중증 장애는 연 24회로 늘리고, 새롭게 제도 대상이 된 경증 장애는 연 4회까지 이용할 수 있는 내용이 새롭게 포함됐다.

위 내용이 포함된다고 해서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이 모두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참여 의료기관 중 약 50%가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보험공단이 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재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주치의 시범사업 선정 의료기관은 모두 634곳이다. 하지만 휠체어 등의 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접근성 증진을 위한 장애인 주차구역, 승강기, 자동문 등이 설치된 곳은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점입가경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어 접근할 수 없고 시각 또는 청각장애인에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62개소나 되었다. 그중 외래진료 없이 방문 진료만 하는 곳은 19개소에 달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장비를 설치한 곳은 55개소,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안내 장비를 설치한 곳은 67개소에 불과했다. 진료를 받고도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 장애인 등록 및 이용현황을 보면 제도 이용 대상인 중증장애인 983,928명 중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에 등록된 수는 3,705명으로 0.3%에 불과해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놀이동산 기구 아래에는 추락으로 인한 인명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러한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현실에서 장애인들은 아플 때 검사받기조차 어렵기에 아파서 가난해지고 가난해서 아프게 되는 것이다. 마거릿 리드가 말하는 문명사회가 아니라 각자도생하는 비문명인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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