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⑦ ‘농인’과 ‘맹인’, 소통의 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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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에서 시그마팀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라이트하우스에서 시그마팀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라이트하우스 시각장애 복지관 방문기

[시그마팀 / 박세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기술발전 시그마(SIGMA) 팀이 지난 7월 31일부터 10박 12일간 ‘디지털 IT, 일상을 바꾸는 기술’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체스터에 연수를 다녀왔다. 팀명인 시그마 ‘Σ’는 합의 기호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지만 서로를 포용하고 우리의 합을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8월 2일,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우리가 미국에 도착해 주로 머물렀던 한 시간 거리의 실리콘밸리 산호세보다 서늘하고 우중충했다. 라이트하우스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교통체증과 복잡한 분위기 탓인지 가는 길 내내 서울 시내를 상기시켰다. 궂은 날씨와 샌프란시스코의 몰락이라고까지 얘기되는 도시의 모습, 낯선 냄새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며 절로 경계심을 가졌지만 그래도 팀과 함께라 서로 의지하고 지켜주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for the Blind and Visually Impaired, 이하 복지관)는 1902년 시각장애인 재활을 주목적으로 설립된 사회복지기관이다. 우리는 그 곳에서 설리번의 모습을 한 시청각중복장애인 전문가(Deaf-Blind Specialist) 최숙희(Sookhee Choi)님을 만나 환대를 받은 덕분에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편히 연수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수키’로 불리는 숙희님은 청각장애인으로 한국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농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미국에 왔다고 한다. 현지에서 청각장애 및 시각장애 재활 교육을 전공하고 보행훈련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현재는 라이트하우스에서 시청각중복장애인을 대상으로 생활자립훈련(Independent Living Skills Training), 독립보행훈련(Orientation and Mobility Training), 취업준비 프로그램(Employment Access Program) 등을 담당하고 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숙희님을 따라 복지관 투어를 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는 서로 너무 먼 장애처럼 느껴졌기에 청각장애인인 나는 시각장애인을 만날 기회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가본 적도 없어서 어떻게 물리적 공간 설계를 했는지 어떤 전문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이 건물 전면의 창밖 배경으로 펼쳐진 도심 속 복지관인만큼 건물의 3개 층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현대적인 시설을 자랑했다. 120여 년의 역사를 기록한 히스토리 월(History Wall)부터, 사무공간, 작업실, 기숙사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각장애 친화적인 주방이었다.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다. 스스로 요리하는 것은 자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술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요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주방에는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칼, 소스 병, 선반, 냉장고 등 모두 점자와 촉각 힌트들이 함께 있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주의 깊게 설계된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백 마디 말보다 실제로 탐방하면서 청각장애인인 나는 청각 정보를 시각 정보로 바꾸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정보를 촉각 정보로 바꾸는 것이 필요함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라이트하우스 시각장애 복지관을 탐방하는 모습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라이트하우스 시각장애 복지관을 탐방하는 모습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짧은 투어를 마치고 우리가 준비한 발표를 위해 회의 장소로 이동하였다. 본격적인 발표에 앞서 대다수의 참석자가 시각장애인이어서 우리는 그들이 목소리를 듣고 앉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을 묘사하며 짧은 자기소개를 했다. 우리 중에도 시각장애인 팀원이 있다 보니 연수 준비 동안 경험했던 과정이어서 우리는 제법 자연스럽게 자기소개를 할 수 있었다.

사전에 준비해 간 질의응답을 통해 복지관에 대해 궁금했던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숙희님을 비롯한 복지관 여러 담당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Q. 복지관과 학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복지관과 학교는 역할이 다르다. 학교는 교육을 하고 복지관은 훈련을 한다. 복지관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두 가지 훈련이 있는데 생활자립훈련과 독립보행훈련이다. 샌프란시스코가 길이 험하고 위험한 동네여서 훈련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흰 지팡이로 어떻게 지형지물을 탐색할 수 있는지 훈련하여 독립적으로 보행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역할이 다르긴 하지만 학교와도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복지관에 다니는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학교와 연계하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주 정부와 계약을 맺고 재정 지원을 받아 캘리포니아 맹학교에서 보행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교사 자격증이 있는 복지관의 직원들은 학교에 일주일에 2번 강사로 출강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며 현장에서 자신감, 자존감을 불어넣어 주려 노력한다. 또한 맹학교에 있는 농맹학생들도 훈련의 대상이다. 농학생인데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학생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Q.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하고 있나요?

우리 복지관에는 21세~93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각장애인이 있다. 이들을 위해 어떻게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어떻게 영상통화를 하는지,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어떻게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는지를 알려준다.

고령의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따로 보장구에 대한 훈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가 지원금으로 운영하고 있으며(National Program – Older individuals who are blind.) 프로그램의 난이도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Q. 복지관의 주요 프로그램인 여름 캠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A. 여름 캠프의 이름은 ‘마법의 언덕’으로 나파밸리 근처에서 진행한다. 여름 캠프는 시각장애인들끼리의 연대를 굳건히 다지고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프로그램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대상은 영유아, 청소년, 가족 등이며 이들을 위한 각각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시각장애 아동을 둔 비장애인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를 인지한 뒤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름 캠프에는 3세 이하의 시각장애 아동과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세션도 있다.

기술 관련 테마별 프로그램으로는 기초적인 디지털 기술, 각기 다른 플랫폼에 대한 이용, 스크린 리더 사용 프로그램 등이 있다.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와 함께 접근성 기술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최근에는 자율주행 자동차 운전 체험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러한 기술훈련을 통해 시각장애 커뮤니티 일원들과 함께 소통하고 상호작용을 만들어 나간다.

Q. 요즘 미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취업 고민은 무엇인가요? 어디서 좌절감을 많이 느끼나요?

취업할 때 시각장애인이라서 특별히 겪는 어려움을 물어보는 거라면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시각장애인이 제한적인 직종에만 진출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복지관은 ‘취업 몰입 프로그램(Employment Immersion Program)’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다양한 직업을 탐색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파트너십을 맺어 시각장애인 개개인의 요구를 반영하여 구직활동을 도와준다. 원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술을 훈련해 역량을 향상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대부분의 미국 회사는 장애인 고용 및 편의지원을 해주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인데 법적으로도 고용인들에게 편의지원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일본 도쿄 출신 미국인인 니키(Nikki)와 필리핀계 캐나다인 링크드인 접근성 팀장인 제니슨(Jennison)은 시각장애인으로서 느낀 동양과 서양,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바라는 기대치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면적이 넓고 인종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니 장애라는 특정 범주만으로 분류가 쉽지 않다. 그 덕분에 장애인이지만 단지 장애인이라는 범주에 가둬지지 않는다.

그렇게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직종을 찾아왔고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장애 직원이 고용된 뒤 회사에서 그 직원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협회와 커뮤니티가 노력해 왔으며 그렇게 지금의 인식을 쌓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커뮤니티끼리의 소통과 연대를 강조하고 싶다고도 전했다.

접근성 팀 직원 게이브(Gabe Griffith)는 자신이 시골에서 자라 대학에서 시각장애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여름 캠프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이 없었다며 이러한 행사를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 다른 시각장애 학생들도 이런 정보를 일찍 접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게이브님의 ‘여름 캠프를 더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고 다른 시각장애 학생들도 이런 정보를 일찍 접하길 바란다.’는 말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청각장애 특수학교로 전학하기 전까지 나와 같은 청각장애 학생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찾기 어려워서 청각장애 특수학교가 따로 있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다. 청각장애 특수학교에 진학한 후, 한국수어 교육 프로그램, 농인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그리고 복지관의 서비스들에 대한 정보들을 많이 접하며 ‘내가 이런 정보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맴돌았었던 답변이었다.

라이트하우스 방문기를 마치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나는 혼자가 아닌 우리 팀 팀원들과 함께 나의 목표를 공유하고 응원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청각장애를 이유로 나의 취업 방향을 수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는 아직 냉혹한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드림팀 연수를 통하여, 미국의 시각장애인들은 자신의 커리어 방향성을 변경하지 않은 채 잘 살아가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감각장애라는 범주 하에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한 울타리에 넣어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는 하나의 범주로 칭하기에는 서로 다른 장애이기에 장애 당사자들은 서로를 만날 기회가 적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수 있다. 나는 이번 드림팀을 통해서 시각장애인 팀원과 소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 끝에, AI 음성인식기술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서 소통해 보았다. 시각장애인 팀원의 말이 내 핸드폰 화면에 텍스트로 변환이 되어서 내가 읽을 수 있었다. 이에 나는 핸드폰에 텍스트를 입력하고 그걸 AI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으로 화답하여 시각장애인 팀원이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걸로 우리는 공감과 소통의 발전을 이루었다.

드림팀을 통한 시각장애인 팀원과 만남, 그리고 시각장애 복지관 방문을 통해 나는 나와 가장 멀리 있는 나를 만났다. 우리가 합이 되고자 했던 고민의 결과가 소통이었듯이 궁극적으로 이런 노력이 모여서 사회 전반의 장애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내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다면 우리 팀처럼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까지 모두 불편함 없이 서로 어울리며 모두가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인 기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라이트하우스 웹사이트 링크 https://lighthouse-s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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