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⑧ ‘소통’이라는 이름의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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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드인 장애인사와 함께한 시그마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링크드인 장애인사와 함께한 시그마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링크드인(LinkedIn) 장애 인사와의 만남

[시그마팀 / 김준호]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기술발전팀이 지난 7월 31일부터 10박 12일간 ‘디지털 IT, 일상을 바꾸는 기술’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체스터에 연수를 다녀왔다. 기술발전팀은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발전을 주제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청년과 수어 통역, 특수교육, 재활공학 등을 전공하는 비장애인 청년들 및 영어통역 지원인 등 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다양성과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만큼 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청년들이 모였고 서로 `상호작용하여 하나로 되어 합쳐 나가자는 의미를 담아 합을 나타내는 수학기호인 ‘Σ(시그마)’라는 팀명을 지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산호세의 화창한 날씨와 반대로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8월 초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쌀쌀했다. 불과 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일 뿐이지만 예상치 못한 변화에 팀원들은 겉옷을 입어야 했다. 8월 2일 수요일에 우리가 만난 장애 인사는 제니슨 아순시온(Jennison Asuncion)이다. 제니슨 아순시온(Jennison Asuncion)은 현재 링크드인에 근무하고 국제 접근성 인식의 날(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AAD)의 초기 창립 구성원이며 라이트하우스의 이사회 임원이다.

링크드인은 ‘직장인들의 소셜 미디어’라는 별명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 산하의 비즈니스 네트워킹 및 구인·구직 플랫폼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는 다른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8월 2일 수요일에 라이트하우스와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날 제니슨도 재택근무 중 라이트하우스로 오게 되어 제니슨의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이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수어 통역사로 일하는 나에게 접근성은 매번 마주하는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았다. 농인들에게 필요한 접근성은 ‘수어를 바탕으로 한 시각적 의사소통’이다. 수어 통역사의 업무는 농인과 수어를 모르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이다. 수어와 구어의 의사소통 양식과 문법에 차이가 있어, 음성언어를 수어로 번역하고 혹은 수어를 보고 음성언어를 통역하여 의사소통 접근성을 높여주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다. 나는 농인들이 겪는 다양한 접근성 불편들에 대해서도 시각장애인인 제니슨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영상 매체나 문화생활, 재난 상황에 수어 통역이나 자막 지원 모두 열악하다. 농인과 맹인을 위한 접근성 지원이 각각 엄연히 다르지만, 미국의 농인, 맹인을 위한 세부적인 지원들을 알아보고 한국과 비교하고 싶었다. 비록 링크드인 본사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제니슨과의 대면 만남으로도 설렜다.

수어 통역사로서 농인들과 수어로 의사소통하다 보니, 나는 시각적인 정보 습득이 매우 익숙하고 중요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 녹아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시각보다는 다른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소개할 때 나의 피부색, 옷차림 등의 인상을 묘사하게 되었다. 드림팀 참여 전에는 한 번도 나의 인상을 묘사해본 적이 없어서 나를 묘사하기가 어색했지만, 시그마 팀원 중 시각장애인이 있어 연수 준비 동안 각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연습을 몇 번 해보았기에 능숙하게 제니슨에게 나를 묘사하여 소개할 수 있었다. 서툰 영어지만 자신 있게 나와 시그마 팀의 이름과 의미를 제니슨에게 소개했다. 발표 전반적으로 나의 목소리와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인지하게끔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했다.

제니슨은 필리핀계 캐나다인이고 출생지는 캐나다 몬트리올이다. 제니슨은 링크드인 입사와 함께 2013년도에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제니슨은 생후 약 18개월부터 시력을 잃어 거의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맹학교를 다니다가 중고등학교는 일반학교 안에 있는 통합교육을 지원받으며 공부했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에서도 프랑스어를 많이 쓰는 독특한 지역이어서 본인은 필리핀계 동양인이면서 영어를 구사하는 시각장애인이기에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다고 한다. 제니슨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맹학교에서 교육 지원 인력과 점자 및 점자책, 음성 설명 등의 편의 지원을 받았다. 그 후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 석사는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제니슨(왼쪽), 통역 중인 이종우 팀장(가운데), 시각장애 청년 니키(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뒤로 김준호 팀원이 한국어 음성을 한국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제니슨(왼쪽), 통역 중인 이종우 팀장(가운데), 시각장애 청년 니키(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뒤로 김준호 팀원이 한국어 음성을 한국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나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일이 많다 보니 평소에 잘 떠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은 무척 긴장했다. 수어 통역을 할 때는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도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었고 긴장하지 않는다. 나에게 수어가 편해서 일지, 말을 잘 못 한다고 생각해서 일지 어떤 것이 맞는지 불확실하다. 나는 농 부모님의 자녀이고 전문용어로 이를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s)라고 부른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국 수어를 먼저 배웠고 한국어를 늦게 뗐다. 부모님과 수어로 대화할 때는 사람들이 쳐다봐도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는 말이 서툴렀다. 매사에 소극적이었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아주 다르다. 지금도 의미를 모르는 단어들이 많지만 그래도 때에 맞게 격에 맞는 문장을 구사하려고 노력한다. 또 틀려도 자신감 있게 말을 하는 태도를 배웠다. 발표하면서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점점 자신감 있게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진행했다. 제니슨도 나의 서툰 영어 발표를 지켜보면서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것 같아 뿌듯했다. 다만, 앞선 라이트하우스의 인터뷰와 기관 투어가 예상 시간보다 지연되어 제니슨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아쉬웠다. 다행히 우리는 인터뷰 전 미리 제니슨에게 질문지를 보냈기에 대부분의 궁금한 점에 대해 답변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제니슨과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했다.

1. 접근성 관련 질문: 링크드인에 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접근성 전문가는 아닐 텐데 어떻게 접근성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트레이닝을 하나요? 팀원들은 모두 접근성과 관련한 기존 경력이 있는지 아니면 당신의 팀에 새로 배치받고 그 뒤에 접근성에 대해 배우는 사람도 있나요?

답변: 2013년부터 링크드인을 다녔고 올해로 10년째 근속해오고 있다. 업무는 Accessibility Engineering Evangelist(접근성 공학 전도사)이다. 첫 직장은 캐나다에 있는 Loyal bank로, 2006년부터 다녔고 접근성 팀에 속해 있었다. 웹 엔지니어, 모바일 디자이너 등과 일을 했었는데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동료들에게 접근성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줄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첫 직장에서의 업무와 현재 일하는 링크드인에서의 업무가 흡사하다는 걸 느꼈다. 예를 들면 현재 링크드인에서 나의 업무는 엔지니어들에게 접근성에 대한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인데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은 장애 접근성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접근성 내용 전문가들이 엔지니어들과 디자이너들을 정기적으로 1년 동안 트레이닝을 시켰다. 또 링크드인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해서 협업하는 회사들이 매우 많아 웹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더욱 준수하도록 정했다.

2. 장애인 정체성 관련 질문: 장애인들이 위기 극복을 잘 해내려면(성공하려면), 자신의 여러 가지 정체성 중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그냥 나 자신’ 정체성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정체성을 우선시하면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나는 장애가 있으니까…’ 라는 생각 뒤로 숨을 것 같아서 ‘그냥 사람’으로서의 나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갔나요?

답변: 장애는 항상 나 자체라고 생각해왔다. 다만 시각장애가 있을 뿐, 시각장애는 나의 모습 중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나의 잠재력을 작은 박스에 가두지 않도록 교육하셨다. 또한 ’내가 만약 눈이 보였다면‘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키워주셨다. 몬트리올 소재의 경쟁이 치열한 사립고등학교에 다녔을 때 당시에는 사춘기 학생들 사이에서 남들과 다른 장애가 쉽게 부각이 되다 보니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런 따돌림은 대학교에 오니 거의 해결이 되었다.

3. 채용, 회사 관련 질문: 포용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에서는 단순히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돕고 이해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정의 내려지곤 하는데 진정한 포용과 다양성은 일방적인 것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장애가 있는 직원들이 회사에 어떤 영향력과 특별한 기여를 하는지 알 수 있나요?

답변: 대학교 다닐 때의 에피소드를 말하고 싶다. 대학교 시절 가끔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낮은 교수님을 만날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매 학기 개강 전, 교수님과 상담을 통해 내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분명히 말씀드리는 과정을 거쳤다. 교수님을 개강 전에 만날 수 없었을 때는, 첫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다가가 자기소개 후 수업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직접 말씀드렸다. 대학교 생활 중 딱 두 번, 수업을 철회하고 다른 수업으로 바꾼 적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꼭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교수님이 칠판에 쓴 수학 공식들을 다 소리 내 읽어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또한 교수님이 수업하다가 학생들에게 질문했을 때, 제가 적극적으로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데. 첫째는 동급생들이 모를 수도 있는 점을 장애인이 알려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효과, 둘째는 교수님의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장애인도 수업을 잘 이해하고 따라오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비장애인들에게 장애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회사 생활도 이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직장에서 제가 겪었던 어려움 중 하나는, 가끔 시각장애 친화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그래서 다른 직원들이 나를 위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나는 나의 일을 다시 이어 나갈 뿐이다.

4. 복지, 지원, 시설 개선 관련 질문: 구체적인 성과를 낼 필요가 있는 회사라는 집단 안에서 장애가 있는 직원들은 특히나 더욱 큰 노력을 할 것이고, 그 안에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할 거로 생각한다. 이들을 위해 지원해주는 복지가 있나요? 승진하는 과정에서도 비장애 동료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성취도를 측정하고 승진 프로세스가 이루어지나요?

답변: 장애인으로서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도움을 요청할 테니,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주변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은 접어도 될 것 같다. 가끔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로 비장애인과 평등하게 경험이나 기회를 얻을 때이다. 링크드인에서 일할 때 장애 직원을 ’장애 직원‘이라고 보지 않는다. 만약 그 장애 직원이 엔지니어라면, 그 사람은 그냥 엔지니어이고 엔지니어의 역량을 갖춘 직원일 뿐이다. 매니저로 오래 근무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 직원의 성과와 노력을 본다. 링크드인은 1년 4분기 동안, 매 분기 초에 매니저와 함께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리고 분기 말에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 함께 확인한다. 회사는 직원들이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편의 지원을 제공한다. 또 링크드인에는 장애인 그룹, 여성 그룹, 스패니쉬 그룹, 아시안 그룹 등 직원 그룹들이 많고 서로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는 그룹이 많다. 서로 공통분모를 나누고 연대하고 지지해 주기에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그마 팀 일원으로서 미국을 처음 방문한 나에게는 사소한 하나하나가 새롭고 인상 깊었다. 인터뷰 중 제니슨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을 특별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장애인들을 향한 인식은 아직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과 동행하는 보조견의 출입은 법적으로 어디서든 허용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불편함을 겪는다. 미국이 장애인을 향한 인식이 좋은 이유는 다양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에 인종, 노인,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 저소득층 등 각기 다른 입장들을 포함할 수 있다. 다른 주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개방적인 주 중 한 곳이어서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태도를 더욱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연수를 진행하면서 내가 다양성에 대하여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서 “사회 전반에 깔린 존중, 공감”을 일상생활에서 숨 쉬듯이 체감할 수 있었다.

제니슨의 인터뷰 중 그의 말 “처음부터 주변 상황이 나를 도와줬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 시절부터 교수님을 찾아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교수님께 내가 강의실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드렸다. 그와 함께 내게 필요한 편의 지원을 솔직하게 요구했다. 그러한 상황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에 입사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결국 현재 나의 권리와 역할을 인정받으며 링크드인에서 일하고 있고 나와 함께 일하는 같은 팀원들도 변화하고 있다.”은 아주 인상이 깊었다.

한국의 장애인들도 미국의 장애인들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자기옹호(Self-advocacy)를 하면서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그 작은 변화가 모여서 큰 변화를 일궈내기를 기대한다. 10박 12일의 연수가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척 빠르게 지나가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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