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드림팀] ⑪ 올바른 농교육을 향하여

0
90
▲벽화를 배경으로 한 시그마 팀 단체 사진. 김관우 청년은 첫 번째 줄 우측에서 두 번째에서 시그마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벽화를 배경으로 한 시그마 팀 단체 사진. 김관우 청년은 첫 번째 줄 우측에서 두 번째에서 시그마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캘리포니아 농학교 California school for the Deaf 방문기

[시그마팀 / 김관우]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주관하고 신한금융그룹이 후원하는 ‘2023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기술발전팀이 지난 7월 31일부터 10박 12일간 ‘디지털 IT, 일상을 바꾸는 기술’ 주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로체스터에 연수를 다녀왔다. 기술발전팀은 장애인들을 위한 기술발전을 주제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를 가진 장애청년과 수어 통역, 특수교육, 재활공학 등을 전공하는 비장애인 청년들 및 영어통역 지원인 등 총 11명으로 구성되었다. 다양성과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만큼 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청년들이 모였고 서로 `상호작용하여 하나로 되어 합쳐 나가자는 의미를 담아 합을 나타내는 수학기호인 ‘Σ(시그마)’라는 팀명을 짓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그마팀 일원으로 성인 이후 처음 해외를 방문한 나에게는 사소한 하나하나가 새롭고 인상 깊었다. 짧은 연수 기간이 마치 한 달 같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연수를 준비할 때부터 캘리포니아 농학교(California School for the Deaf, 이하 CSD) 방문이 기대되었다. 재활공학과 학생으로, 또 뇌병변장애를 가진 청년으로서 장애 학생들의 일상생활이 궁금했기 때문에 구글, 애플과 같은 기업보다는 학교에 조금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일반학교에서 쭉 통합교육을 받아온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도 특수교육 환경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여러모로 기대를 안고 농학교를 방문했다.

캘리포니아 농학교는 북부 캘리포니아 전역의 농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애플의 코딩교육인 Everyone Can Code(에브리원 캔 코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시범학교로 유명하다. Everyone Can Code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코딩을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애플에서 제공하는 무료 커리큘럼으로 2019년 캘리포니아 맹학교·농학교, 텍사스 맹학교·농학교 등 일부 학교만 선정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런 학교와의 만남이 성사되어 우리 팀이 방문할 수 있어 다행이고 감사했다.

8월 4일 오전에 애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CSD를 방문했다. 날씨가 아주 화창했고 교사들도 모두 나와 날씨처럼 따뜻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리셉션에서 방문증을 발급받은 후 회의실로 자리해서 학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교장인 Clark Brooke이 발표의 포문을 열었다.

학교 로고를 통해 학교를 소개했는데 재학생이 2013년에 제작한 로고는 경험, 번성, 나아가다라는 수어의 동작이 합쳐진 모습이다. 이 세 가지 수어를 합친 모습이 학교를 상징하는 독수리처럼 보인다. 농학생으로 자라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길 바라는 진취적인 학생의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내가 재학 중인 대구대학교와 뜻이 비슷하여 인상 깊었다. 대구대학교의 로고는 사랑, 빛, 자유가 상징이다. 교장 선생님은 농학교 학생회 임원들의 활동사진을 보여주면서 학생 중심의 학교를 만들고 싶고 학생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주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 소개를 마친 후 동석한 교사들을 소개했다. 교무부장 Sulghi Hong, CORE(Curriculum Outreach Resource Education의 줄임말로 조기개입, 부모교육, 지역 교육기관 및 지역 사회 교육, 학업 평가 상담(읽기, 수학, 미국 수어)을 지원한다.) 담당교사인 Amy Novotny 그리고 갤로뎃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다 명예퇴직한 Dr.Marlon Kuntze까지 함께했다.

회의는 단순 인터뷰가 아닌 자유롭게 여러 사람이 생각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언어의 다양성이다. 이 회의실에서 사용된 언어는 총 네 가지였다. 먼저, 농인인 교장 선생님은 미국 수어로 발표했고 농학교에 근무 중인 미국 수어 통역사는 음성 영어로 통역한 뒤, 시그마팀 팀장이 음성 한국어 통역을 하고 동시에 수어 통역사 팀원이 한국 수어로 전달했다. 현장은 조용했지만 실제로는 수어로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교사들의 수어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으며 이는 음성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의 어투와 언어 습관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져서 생경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CSD의 회의실에서 교무부장 Sulghi가 미국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수어 통역사의 영어 통역을 듣고 한국어 음성으로 통역할 준비를 하면서 아이패드에 메모 중인 모습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CSD의 회의실에서 교무부장 Sulghi가 미국 수어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수어 통역사의 영어 통역을 듣고 한국어 음성으로 통역할 준비를 하면서 아이패드에 메모 중인 모습이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학교 소개에서 신기했던 부분은 이 학교에서는 이중언어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농인들의 주 의사소통 수단이 수어지만 영어도 언어발달과 학업성취에 중요하기 때문에 이중언어교육을 통해 미국 수어와 영어 둘 다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양한 부모의 언어 배경을 반영하여 영어 수어와 스페인어 등 다른 외국어의 수어를 배우기도 한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점은 농학생들이 건강한 농 정체성을 지닐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청각장애를 극복하는 교육에서 끝나지 않고, 언어 습득, 농인으로서의 정체성, 농역사, 농사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해 주려고 노력한다.

우리 팀은 사전에 총 4가지 영역의 질문을 준비했다. 농학생들의 심리적 고충과 멘탈케어, 외국어 교육, 같은 학년 대비 낮은 문해력, 그리고 코딩교육이다. 현장감을 살려 질의응답을 정리해 보았다.

심리적 고충과 멘탈케어
Q. 청각장애는 사실상 ‘소통 장애’나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의사소통 지원도 필수지만 자유롭지 못한 소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 및 정신건강 문제도 같이 챙겨야 하는데 이들을 위한 심리지원을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나요?
A. CSD의 교사들은 100% 수어가 가능하므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는 소통과 관련된 정서적인 불안, 걱정은 없다. 다만 수어가 능숙하지 않다거나 제2외국어를 쓰는 가정환경이라면 수어 통역사를 대동해서 의사소통하고 수업에 참여한다. 토론 수업, 상담 활동들도 다 미국 수어로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교육
Q. 농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할 때 더 중점적으로 공부해야 할 영역이 있을까요?
A. 학생들의 외국어 교육에 있어 제2외국어 교육을 챙기는 것도 좋지만 일단 미국 수어, 영어 구어에 대한 교육을 우선시해야 한다. 어떤 언어든 농인이 제2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비장애인이 제2외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다르다. 예를 들어, 농인의 외국어 학습에는 제한적인 청력으로 듣기와 말하기보다는 읽기, 쓰기를 더 중점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문해력
Q. 청각장애 학생들의 문해력은 비장애 학생들에 비해서 크게 떨어지고, 고등학생이더라도 이들의 문해력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 정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학교가 중점을 두는 교육은 뭐가 있나요?
A. Dr. MarIon Kuntze: 농학생들이 같은 학년 대비 영어 구사 능력의 성취가 낮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에서는 언어능력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도 주 정부에서 마련한 언어 교육 기준에 맞춰 교육하고 주 정부의 언어능력 평가를 대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추가로 캘리포니아주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조기 노출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언어습득에 있어서 수어도 구어만큼이나 뇌의 뉴런이 생성되고 서로 연결되는 중요한 시기인 0~5세 기간 동안 조기 언어 노출이 매우 중요하다. 비장애 부모님은 그 시기에 본인들의 장애 아동에게 어떤 것이 최선일까에 대해서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캘리포니아에 새로 제정된 법 중에, 청각장애 아동으로 진단을 받으면 그 사실이 교육청에 보고되도록 하고 있다. 학교는 장애 아동의 부모님께 청각장애 교육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 그 이후의 일들은 학부모의 선택이다. 다만 조기에 인지발달이 되지 않으면 문해력 향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https://earlystart.csdeagles.net/home/assessments/sb-210-lead-k [농아동의 언어 조기 노출 보장법 소개 웹사이트]

코딩교육
Q. 우리나라도 장애 학생들을 위한 IT 교육이 흔하긴 하지만 일회성에 그치거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애플이 지원했던 Everyone Can Code의 효과는 어땠나요?
A. 코딩은 기술교육 프로그램의 일부이다. 자바, html 스크립트 등 컴퓨터 언어를 이해하는 교육과 캐드(CAD) 등 소프트웨어 활용, 웹디자인 등의 수업이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운 좋게도 우리 학교 근처에 실리콘밸리가 있어 애플, 구글 등등 각종 기관에서 기술교육을 제공받아 왔다. 애플에서 코딩 교육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하기도 하고 2019년 Everyone Can Code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애플 CEO인 팀쿡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서 코딩 교육이 왜 장애학생에게 중요한지와 애플이 추구하는 접근성을 소개하기도 했다.

https://people.com/tv/nyle-dimarco-deaf-students-apple-tim-cook/ [기사 링크: 애플의 CEO 팀 쿡이 Everyone Can Code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캘리포니아 맹학교와 농학교를 방문했다.]

질의응답을 마친 후 학교 측에서 캠퍼스 투어를 준비해 주었다. 캠퍼스는 한국에 있는 학교들과는 달리 넓은 부지에 단층 건물만으로 구성되어 친근한 느낌이었다. 여름방학 기간에 방문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생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학교 곳곳에 학생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건물에 학생들이 직접 작업한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국계 학생이 참여한 벽화도 있어 인상 깊게 감상했다. 벽화는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색 배경에 아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연두색으로 나라의 경계를 색으로 구분하고 각 나라를 상징하는 판다, 만리장성, 하회탈, 북극곰, 사막여우 등등이 그려져 있었다. 벽화의 한쪽에는 ‘United We Stand’라는 세 단어와 세 단어를 표현하는 수어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동작을 따라 해보며 같은 생각을 나눴다.

이 벽화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농학교 방문을 마쳤다. 점차 한낮의 뜨거운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기관 탐방 동안 교사들이 모두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열정적으로 말씀 해주셔서 우리가 한국에서 준비해 간 질문을 모두 소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더 풍부한 공감을 통해 ‘올바른 농교육’을 향한 열정과 헌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thevom@naver.com'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승인
알림
663a67b4263cb@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