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휴지 걸이 하나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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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휴지걸이 ©픽사베이
▲화장실 휴지걸이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난 시각장애인이지만 공공화장실을 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다. 드나들기 편리하게 특별히 설계된 장애인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화장실은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세면대, 변기, 핸드드라이어 정도의 구조물들이 약속한 듯 일반적인 장소에 나열되어 있다. 건물 모양이나 인테리어의 형태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만히 벽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한 성과를 달성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휴지의 위치도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오른쪽 벽 어딘가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앉은 상태에서 손을 살짝 뻗다 보면 휴지 걸이를 찾는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말로 설명하려니 이런 것이지 실제로는 큰 생각하지 않고 이 모든 탐색을 습관적으로 해낸다. 그것은 화장실이 가지고 있는 구조가 생각보다 많이 일반적 획일을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해외에 나갔을 때도 그 약속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캄보디아 화장실에 들어갈 때 오른쪽이 아닌 왼쪽 벽에서 느껴지는 휴지 걸이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국내에서도 어쩔 수 없는 구조 때문에 조금 다른 위치에 놓인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아는 선에서 그건 대체로 오른쪽 벽에 놓을 수 없는 구조에서만 그랬다.

오른손잡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나 익숙해진 습관 때문인지 왼쪽 벽의 휴지를 떼어 뒤처리하는 것이 꽤 불편하게 느껴졌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대부분 왼손잡이인가?’, ‘늘 익숙한 나머지 왼손잡이들이 불편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었네!’라는 생각들을 할 때쯤 오른쪽 벽에서도 뭐가 손에 걸렸다.

늘 보아오던 오른쪽 벽의 휴지 걸이가 거기에도 있었다. 내가 착각했나 하며 다시 만져본 왼쪽 벽에도 역시나 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번쩍했다. 휴지 걸이 하나만 더 걸어두면 왼손을 쓰는 사람이나 오른손을 쓰는 사람이나 모두 편할 수 있었다. 어느 쪽에 거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유리할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화장실 벽에 휴지 걸이 하나를 더 거는 것을 어려워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 다수가 편리하고 익숙한 상황이 모두가 편리해질 수 있는 더 나은 상황을 고민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화장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구조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매일 겪어야 하는 불편함일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높이의 세면대, 같은 모양의 수도꼭지, 같은 구조의 변기들은 조금 더 생각하면 더 많은 이들이 편리해질 수 있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휴지 걸이 하나를 더 거는 것만큼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획기적인 편리함으로 느끼는 터치 형태의 가전제품들 속에서 난 극도의 불편함을 느낀다. 다수가 공감하는 발전 속에 보이지 않는 나의 외침에는 잘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점자를 붙여준다거나 음성기능을 넣어주는 것은 큰 수고로움이 아니지만 터치만으로도 편리한 사람들은 그 작은 차이를 고민하는 데 에너지를 잘 쓰지 않는다.

나 또한 다수에 속하게 될 때 또 다른 소수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에 매우 둔감했다. 왼쪽 벽에 휴지 걸이 하나 더 달아주는 것에 이렇게 놀랐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10명 중 9명이 합의를 할 때 그리고 그것이 그들 모두에게 익숙해질 때 한 명의 어려움은 개선되기 힘들다. 나머지 한 명의 소리를 듣고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10명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휴지 하나 더 놓는 것만큼 쉬운 일일 수 있다. 나의 삶이 너무나 편안하다면 익숙함에 가려진 누군가가 있는지 조금만 돌아보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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