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의지’는 장애를 전제로 논할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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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는 마음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악기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악기들 중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첼로의 소리를 듣지 못해도 진동을 느끼며 연주할 수 있다. 사진. ©이담사진실 이관석
첼로는 마음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악기이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악기들 중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첼로의 소리를 듣지 못해도 진동을 느끼며 연주할 수 있다. 사진. ©이담사진실 이관석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예전에 모 국회의원이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라는 비하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동안 기자 신분이라 중립을 지킨담시고 특정 이슈와 문제에 대해 (특히 정치적인 부분에는 더욱) 생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해당 비하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눈과 귀라는 두 감각기관에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면서 얼마나 강한 의지를 필요로 했는지 돌아본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거창하게 내세운다면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도, 검도를 배우는 사람도 지구상에 박관찬 말고 또 있을까? 강력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정보접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하고있는 어떤 것을 드러내는 과정도 쉽지 않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딘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게 기자나 첼로, 검도일 수도, 그것도 아닌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지금은 하고싶었던 것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 이 시점에 이르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강한 의지’였다. 특히 첼로와 검도라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더더욱 강력한 의지가 필요했다.

첼로는 시작하기 위해 네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레슨을 거절당했다. 그들은 장애(특히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첼로를 배우기 어렵다고 했다. 다섯 번째 선생님이 레슨을 받아주셨지만 그 뒤에 만난 선생님은 장애에 대해 몰지각한 분이었다. 그래서 레슨은 물론 첼로의 활을 잡는 것조차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마음 속에서 ‘포기’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활을 잡고 첼로를 연주할 수 있었던 건 지구상에서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는 악기인 첼로의 매력, 그리고 장애를 잘 이해하며 레슨해 주시는 좋은 선생님, 그리고 더 발전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지가 없었다면 지난해 생애 첫 연주회라는 기획과 올해 두 번째 연주회 준비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2024년부터는 검도를 배우고 있다. 지금 다니는 검도관도 처음 연락했던 곳이 아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검도관에 다니고 싶었는데, 입관을 거절당했다. 두 곳의 검도관도 입관을 거절했는데, 이유는 ‘장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의지가 약했다면 거기서 검도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꼭 검도가 아니어도 다른 운동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지도 모르지만, 검도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던 덕분에 입관이 가능한 검도관을 찾았다.

검도관 관장님도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동작부터 수업이 끝나고 인사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열심히 가르쳐 주신다. 수업 과정을 통역해주기 위해 활동지원사가 옆에 있어도 관장님이 직접 기자의 손바닥에 글을 적으며 설명해 주신다. 또 이론을 배울 때도 계속 진도만 나가지 않고 잘 따라오고 있는지, 잘 이해했는지 꼭 확인하는 과정을 잊지 않으신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해 나갈 권리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가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런 의지를 존중받거나 박수를 받으면서 누군가에게는 동기부여를 줄 수도 있고, 새로운 커리큘럼이 개발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일부러 의지를 가지는 건 아니다. 정말 간절하게 첼로 연주를 하고 싶고, 검도를 배우고 싶은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의지와 상관없이 몇 번씩의 거절을 당해봤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쩌면 그 거절했던 사람들의 의지가 더 약한 게 아닐까? 지금 첼로도, 검도도 열심히 배우고 있는 걸 거절했던 사람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첼로를 연주하려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거나 “검도를 할려면 눈이 잘 보여야 한다”라는 틀에 박힌 듯한 사고를 가지면 ‘장애’가 있어서 못한다거나 안될 거라는 생각이 곧 의지가 약하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시도해보지도 않았으니까.

첼로를 배우면서 연주회를 할 거라는 생각은 정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애 첫 연주회를 하게 되자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연주회 후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는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있는 연주회였기 때문에 한동안 긴 여운에 젖어 첼로에 대한 의지가 약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은 첫 연주회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두 번째 연주회를 준비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생겼다.

검도는 이제 배운지 한 달이 넘어가서 앞으로 어떤 검우가 될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솔직히 대련을 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은 기본기에 충실하며 배우고 있다. 검도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지도해 주시는 관장님을 믿고 열심히 배우다 보면 충분히 즐겁게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지의 강함 또는 약함은 장애를 전제로 논해질 단어가 아니다. ‘장애인이라서’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누구나 의지가 약할 수도, 강할 수도 있다. 장애가 있어서 비장애인보다 훨씬 강력한 의지를 가진 장애인도 얼마든지 있다. 결국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라는 말은 틀렸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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