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69] 발달장애인 가정 참사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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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일 서울시에서 발생한 발달장애인 가정의 참사를 추모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2024년 2월 2일 서울시에서 발생한 발달장애인 가정의 참사를 추모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우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세상의 무겁고 거친 문을 밀어 열면서 살아오면서, 어느 날 내가 기운이 달려서 그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지 못할까봐, 자다 일어나 밤을 지새우곤 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허공으로 난 문을 열고 서있거나, 절벽으로 막혀 열 수 없는 문 앞에서 무릎이 꺾였다는 소리를 들으면, 한참 동안 망연했습니다. 그 때마다 참사의 소식은 그게 마지막이길 간절히 빌었지만, 번번이 그 소원은 어긋났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을 때면, 우리는 버리지 않고 살아온 세월과,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할 세월을 헤아려 봅니다.

새해가 되고 한 달, 우리는 또다시 장애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들었습니다.

젊은 아버지가 이제 열 살 먹은 세쌍둥이 중에서 장애가 무거워 가장 애틋해하던 막내딸을 데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애를 가진 둘째와 첫째는 아내에게, 손주들을 애지중지 돌보던 외할머니에게 남겨졌습니다. 몸은 고단했을지언정 한 번도 아이들의 장애로 삶을 원망해 본 적이 없다는 엄마는 막내를 데려간 남편의 야속한 선택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십 년을 씩씩하게, 그늘 없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왔다는 엄마는 그동안의 세월이 꺾여버린 아픔에 눈물만 흐르고, 이 사실을 남겨진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할지, 스스로 자신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백 가지 사는 이유가 있어도 한 가지 죽는 이유로 사람은 세상을 떠납니다. 십 년을 버텨온 젊은 아빠의 참담한 선택이 우리 가슴 속 둑을 무너져 내리게 합니다. 세상을 저버린 젊은 아버지와, 아버지에 의해 영문 모를 눈망울로 사라져갔을 사랑스런 막내딸, 열 살 먹은 그 아이를 고인이라 불러야 하는 이 참담한 사실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세상을 버리는 일은 얼마나 큰 절망에서 오는 것일까요. 자식에게 남아있는 삶을 끊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아프고 모진 마음일까요. 이미 세상을 달리한 분의 일이라 무어라 원망하기도, 위로하기도 어렵습니다.

장애가 가장 심한 막내딸을 데려간 그 마음을, 저 컴컴하고 깊은 바닥에 내려가 있는 그 마음을 우리는 건져 올리기 힘들어 몸이 떨립니다. 아빠는 국가가 내 아이들을, 내 가정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겠지요. 국가가 외면한 그 무거운 책임은 홀로 남겨진 아내가 오롯이 짊어져야 했겠지요.

십 년을 그늘 없는 가정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아빠의 마음속에, 장애의 무게란 사랑했던 막내딸의 삶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아득한 절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장애라는 그늘은, 멀리 있었던 게 아니고 바로 그 집을 감싸고 드리워져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납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의 목숨을 거두고 자신의 삶도 끊어버리는 이런 끔찍한 일이 보통 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 해에도 여러 번 발달장애 가족의 참담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마다 내가 꺾이고, 내가 허공에 던져지고, 내가 숨을 버리고, 내가 피를 흘린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아이의 숨을 거둔 것 같습니다.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쳐 웁니다. 슬픔에 가슴 속의 둑 한 켠이 무너져 내립니다.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면 그 모진 선택을 되돌릴 수 있었겠지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지 못한 것은 왜일까요. 왜 국가와 사회는 그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을까요. 우리의 투쟁이 부족했을까요. 우리가 서로를 붙잡아주지 못했을까요. 국가는 왜 이토록 여전히 염치없고 불성실할까요.

엄마는, 지나온 세월동안 엄마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했다고, 한순간도 장애를 원망하거나 고통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그것을 알아달라고, 널리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우리는 압니다. 두 아이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엄마는 십 년 동안 버텨온 그 씩씩함으로 앞으로의 세월을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도 그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는 눈물을 씻고 ‘삶의 결의’를 다지려고 합니다. 절망의 그늘 속에서 죽음으로 돌아가지도 말고, 죽음으로 데려가지도 말고, 오직 삶만을 바라보는 삶의 결의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언젠가 부질없는 희망을 꿈꾸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 희망이 되리라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 결의의 힘으로 우리는 남겨진 가족과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겠습니다. 국가가, 사회가 책임을 다할 때까지,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투쟁하겠습니다.

올겨울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세상을 떠난 막내의 마지막 겨울에 함박눈 속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 있었기를 빕니다.

두 분의 영전에 꽃을 바칩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2024. 2. 6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회원 일동, 고인의 영전에 삼가 쓰다.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thevom@naver.com'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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