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너 그렇게 살지 말고 너그럽게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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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러운 마음과 같은하늘과 바다 ⓒ픽사베이
▲너그러운 마음과 같은하늘과 바다 ⓒ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명절을 맞이하여 처가댁 방문하는 날이다. 오후 늦은 기차라 충분히 자고 느적느적 외출준비를 이어갔다. 식사를 마친 뒤 여유 있게 디저트까지 챙겨 먹고 콧노래 불러가며 목욕재계까지 마쳤다. 성격 급한 나에겐 이젠 슬슬 나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는 시간이지만 아내의 마음엔 아직 충분한 여유가 있는 듯 보인다. 남은 준비를 하는 속도가 빨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나가 봐야 할 것 같아요.”라는 내 말에 “아직 충분해요. 걱정하지 말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즐겨 듣는 음악까지 틀어 놓고 콧노래 부르는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기다리다 다시 한번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해 보지만 “저도 다 시간 계산하고 있으니 괜찮아요.”라는 답만 돌아올 뿐이다.

어느덧 내 머릿속 계산으로는 지금 나가도 예매한 티켓의 기차는 타지 못한다는 확신이 들 때쯤 되어서야 우리는 현관문을 나섰다. 가야 할 길과 반대 방향에 있는 쓰레기통에 집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아내는 그때까지도 우리가 늦으리라는 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서울역 도착시간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아내의 걱정은 나와 비슷한 방향을 향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서울역에 내린 후 기차 승강장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단 5분이었다. 어른들께 드릴 선물과 캐리어를 들고 있는 시각장애인과 여성의 조합으로 그 시간 내에 기차에 탑승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부정적 예측으로 가득 찬 나의 의견을 내뱉는 것은 안 그래도 걱정이 시작된 아내에게 어떠한 도움도 될 리가 없었다.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원망하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지하철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움직일 것이고 우리에게 그 안에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더 이상의 노력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기차를 놓치게 되었을 때도 아내와 내가 속상하지 않을 수 있는 다음 방법을 구상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쯤 더 기다리면 입석의 기차표가 남아있었지만, 몇 시간을 짐과 함께 서서 간다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과감히 오늘의 방문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지만 서운해하실 어른들을 생각하면 그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궁리해도 답을 찾기가 힘들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로를 원망하는 것은 최악이라는 것이었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지만, 시각장애인 남편을 안내해야 했지만, 계단에서도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달렸다. 1분! 2분! 3분…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르고 오후 늦게까지 누워있던 몸은 무거웠다. 탈 수 있을 듯도 하고 몇 초 사이에 기차가 아슬아슬하게 떠나 버릴 것도 같은 심장 쫄깃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기차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아직 많은 승객이 줄을 서 있었다. 명절 덕분인지 평소보다 많은 승객이 탑승하는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셔츠는 땀으로 젖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복잡한 다음의 경우의 수를 계산할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거봐요. 서두르라고 했잖아요.”라든가 “당신 때문이잖아요.” 따위의 말을 주고받았다면 우리는 무사히 기차를 타고 나서도 다투었을 것이다. “거봐요. 이렇게 탈 수 있는데 나한테 그렇게 화를 냈어요?”, “당신 때문에 이렇게 땀이 나고 숨이 차잖아요.”는 결국 명절의 모든 일정을 망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종종 실수하며 살아간다. 착각하기도 하고 잘못 계산하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한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의도한 대로 매번 될 수는 없고 그 때문에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실수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의 방향은 너그러움이다. 기차는 놓칠 수 있지만 사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른 이로 인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너 그렇게 살지 마!”라고 말하고 싶을 때 너그럽게 살아주어야 한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한 번 품어주는 것이 훨씬 인간적인 해결 방법 아니겠는가?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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