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첫째도 화장실, 둘째도 화장실, 마지막도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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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있는 곳이라면 장애인 화장실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다면서 장애인 화장실은 없는 곳도 있다. ©박관찬 기자
화장실이 있는 곳이라면 장애인 화장실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다면서 장애인 화장실은 없는 곳도 있다. ©박관찬 기자
  • 장애당사자가 총선에 바란다-2
  • 화장실이 있는 모든 곳에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야
  • 있더라도 이용이 어려운 곳도 있어 장애인에게 ‘불편’한 화장실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2024년 국회의원 선거(4월 10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2024 총선장애인연대(총선연대)’가 각 정당에 요구할 장애인정책 공약안을 발표한 바 있다. 더인디고는 기자가 장애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실제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과 그로 인해 이번 총선에 어떤 요구를 바라는지를 들어봤다. 이번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다.

#1. 장애인은 볼일 보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줘야 하나요?

A 씨는 약속장소로 갔다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그곳으로 오기 전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미리 확인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던 A 씨는 깜짝 놀랐다. 남자 화장실 안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었는데,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 다른 화장실 문과는 다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시를 떠올린 A 씨는 “밖에서 화장실 안의 사람이 뭘 하는지 충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문이 문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진저리를 치며, “내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다 보여주는 기분이라서 수치심이 들고 정말 기분도 별로였다”고 말했다.

실제 A 씨가 갔던 건물의 장애인 화장실만 그런 게 아니다. 잘 살펴보면 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이 뿌옇게 되어 있어서 화장실 안의 사람이 뭘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화장실 내 칸마다 변기가 있는 곳은 문을 닫으면 그 안을 볼 수 없는 것과 대조된다.

#2. ‘장애인 편의시설이면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야죠?

맛집 탐방을 좋아하는 B 씨는 그날도 맛집을 검색하다가 가 보고 싶은 맛집을 발견했다. 해당 맛집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던 중 ‘장애인 편의시설’이라는 글귀를 확인하고, 그곳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해당 식당에서 식사 중 급하게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B 씨는 화장실을 금방 찾았지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던 것이다. 직원에게 물으니 해당 건물 내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B 씨는 어쩔 수 없이 식당을 나와 인근 지하철역 안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까지 가야 했다.

B 씨는 “식당에 돌아가서 직원에게 식당 정보에 나와 있는 ‘장애인 편의시설’은 뭘 의미하는지 물어봤는데, ‘엘리베이터’를 의미한다고 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 좋은데,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다면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항의하면서 식당 정보를 제대로 안내해달라고 요구했다”며 “솔직히 식당이든 어디든 방문하려는 목적지마다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썩 내키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드러냈다.

A 씨도 “화장실은 우리가 가고 싶을 때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신호가 올 수 있다”고 전제하며 “그래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장애인 화장실 위치를 항상 파악해두지 않으면 곤혹스러운 일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저도 가능한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위치에서 약속을 잡고, 아니면 화장실 가고 싶지 않아도 일부러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곳에 먼저 들려서 볼일을 보고 약속장소에 나가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식사 후 배불러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화장실이 없어 곤혹스러운 상황은, 장애인이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서 곤혹스러운 상황과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관찬 기자

#3. 구조도 엉망인 장애인 화장실

C 씨는 장애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변기의 물을 내리려고 하다가 깜짝 놀랐다. 물 내리는 버튼이 변기에서 조금 떨어진 벽에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버튼이 위치해 있어서 휠체어로 옮겨간 뒤 버튼을 누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C 씨는 “무슨 생각으로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더라”고 혀를 차며 “마치 변기 물 내리는 건 볼일 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야할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말이 장애인 화장실이지 실제 들어가 보면 화장실 내부가 너무 좁아서 변기에 잘 앉을 수 있도록 휠체어를 이동시킬 공간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한 곳이 많았다”고 불편함을 토로했다.

#4. 화장실이 있는 곳엔 장애인 화장실도 당연히 있었으면

B 씨는 “식당에 가서 배부르게 먹었는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사람에게 화장실이 없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장애인 화장실이 필요한 장애인에게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서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고 하며 장애인 화장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그만큼 처음 건물 내 화장실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장애인 화장실을 함께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C 씨도 “그냥 만드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정하고 있는 장애인 화장실 크기도 준수하고 만들면서 장애인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괜찮은 환경인지를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장애인 화장실의 필연적인 중요성을 이번 총선에서 정치인들이 많이 언급해주셔서 우리 국민들도 장애인 화장실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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