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빈곤]이렇게까지 해도, 결국 빈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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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현금으로 대가를 받는 장애인도 있다. ©박관찬 기자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현금으로 대가를 받는 장애인도 있다. ©박관찬 기자
  • [장애와 빈곤]①빈곤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현실
  • 기초생활수급권 자격 유지를 위해 현금 수령
  • 조금이라도 소득 보전을 위해 부정수급해도 빈곤은 그대로

[더인디고 = 박관찬 기자] 2014년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세계에서 경제력으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이지만, 그 이면에는 빈곤한 삶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인디고는 ‘송파 세 모녀’ 사건 10년을 추모하며, 대한민국에서 빈곤한 취약계층 중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그에 대해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개선이 필요한 지를 냉정한 시각으로 살펴본다.

당당한 근로계약 대신 현금 지급

안마사로 근무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A 씨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다. 사실 안마사로 ‘근무’한다는 건 기자가 사용한 단어일 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직업으로서 근무’라고 보기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A 씨가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안마사’라고 말하지 못하거나 ‘근무한다’고 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A 씨는 “안마사로 정식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으면 기초생활수급권에서 탈락하게 된다”라며, “정식 계약을 하더라도 현재 수령하는 기초생활수급비보다 더 많은 소득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서 선뜻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어떤 형태의 안마사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A 씨는 한참동안 대답을 꺼렸다. 익명과 비밀 보장이라는 걸 기자와 약속한 후에 A 씨가 일하는 형태는 ‘현금 지급’이었다. A 씨가 고객에게 안마를 할 때마다 건별로 그에 대한 대가를 현금으로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따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안마를 받고 싶은 고객이 있을 때만 ‘비상근’으로 출근한단다.

A 씨는 “현금으로 소득을 받으니까 기초생활수급권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며 조금 더 (소득을) 챙길 수 있다는 건 장점”이라면서도 “솔직히 이렇게 살아도 생계비 걱정이 없을 만큼 안정적인 생활이 유지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저도 정식 근로계약을 맺고 매월 받는 월급에 뿌듯해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에서 빈곤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내놓은 각종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니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A 씨 말로는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신청한다고 해서 바로 지급되는 게 아니고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알려준 긴급복지지원제도는 대상자가 아니라고 한다.

A 씨는 “정부나 주민센터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 빈곤층을 구제하거나 지원하기 위한 제도는 많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정작 실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아무것도 없더라”고 한숨을 내쉬면서 “진짜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뭔가 겉만 화려하고 속은 비어 있는 제도만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신청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신청할 수는 있는데, 선정되어 어떤 금액을 받게 된 게 현재 수령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비보다 더 적은 금액일 수도 있다. 그럼 손해 아니냐”고 반문하며 “그럼 당연히 다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신청하고 싶을 텐데, 재신청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정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선뜻 다른 신청을 해보기도 두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부정수급

한참 고민 끝에 입을 연 B 씨도 익명과 비밀 보장을 간곡히 요청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B 씨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 씨는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장애인들도 B 씨처럼 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B 씨가 가진 직업으로 일정 소득은 보장되지만, 최저임금 구준의 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에 가정 부양과 의료비, 주거비 등 매월 지출이 많은 그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급여가 ‘최저임금 이상’이라는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활동지원사로부터 근로에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럴 경우 정작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지원은 시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B 씨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한 본인부담금도 20만 원 가까이 된단다.

B 씨는 “그래서 활동지원사와 협의하여 활동지원사가 받는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제가 받고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엄연히 부정수급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순수하게 제가 받는 소득으로는 매월 지출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나 병원비, 월세 등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답답해하며 말했다.

B 씨의 설명에 의하면, 한 달에 이용 가능한 활동지원시간을 모두 결제하도록 한 뒤, 활동지원사가 받는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B 씨에게 현금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신 활동지원사도 결제한 시간만큼 근무하지는 않는다. B 씨는 활동지원사로부터 받는 현금에서 활동지원서비스 본인 부담금을 충당하고 병원비 등에도 사용한다고 한다.

B 씨는 “장애인들은 직업이 있더라도 비장애인에 비해 급여가 턱없이 낮은 경우가 많아서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며, “소득이 충분히 보장된다면 활동지원서비스를 이렇게 이용하지 않고, 본인 부담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그에 맞는 서비스, 제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받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지원인 제도도 장애인 근로자를 위한다면서 ‘최저임금 이상’이 안 되면 서비스 제공이 안 되는 걸 보면 과연 얼마나 많은 장애인 근로자가 최저임금 이상을 받으며 근로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을지 의문이다”며 문제도 제기했다.

자살을 생각한다

인터뷰에 응한 A, B 씨 모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유는 떳떳하지 못한 것 같은 방법으로라도 소득을 유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B 씨는 “정부에서 무슨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는 것 같고, 그 혜택을 받는 통계가 있는 것 같아도 실제 빈곤하게 지내는 장애인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이제 저도 나이도 들고 하니 건강 관리를 위해 운동도 하고 문화생활도 하고 싶은데, 거기에 경제력을 투자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B 씨는 그래서 문화생활이 ‘사치’라고도 했다.

A 씨는 “요즘 다포세대라 불리는 청년들도 빈곤한 경우가 많다는 것도, 꼭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빈곤한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종종 봤다”면서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추세에서 우리 빈곤 취약계층의 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는 충분히 뒤따라오지 못하니까 많이 힘들고,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무거운 마음을 전했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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