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흠 없는 관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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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떨어진 상태에서 손 잡은 남녀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나에게는 오래된 물건이 많다. 특별히 물자 절약 정신이 투철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것에 큰 욕심이 없어서 한번 소유한 것은 그 기능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까지는 잘 버리지 못한다.

며칠 지나면 스마트폰은 4년을 채우게 되고, 올가을 꺼내 입은 옷들도 전화기보다 내 몸에 먼저 닿았던 것들이 많다. 우리 집 냉장고, 세탁기, 벽을 가득 채운 가구들도 대체로 다른 집의 것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다.

전자기기들은 번뜩이는 최신기능을 가지지 못했고 옷이나 가구들도 올가을의 트랜드를 따라가기엔 매우 버겁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반짝거리던 외관은 얼룩이 생기기도 하고 크고 작은 흠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군데군데 상처가 많은 휴대전화는 오늘도 조심성 없는 나 때문에 바닥을 뒹굴었다.

이 녀석도 분명히 몇 년 전엔 값비싼 새 제품이었고 내게도 몇 달 동안이나 비닐을 떼지 못하는 조심스러운 대상이었지만 오늘은 바닥에 널브러진 그 녀석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습관적으로 다시 집어 들었다.

아주 살짝 미안한 맘도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오래된 물건이 주는 부담 없음이 괜스레 여유 있는 웃음을 짓게 했다.

떨어뜨리거나 부딪혀도, 때때로 조금 더러운 것이 묻거나 전화기가 빠르게 작동하지 않아도 난 크게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편안함이 좋아서 새로운 물건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오래된 사이일수록, 가깝게 지낸 시간이 길수록 다툼 없고 흠 없는 관계는 없다. 상처 주고 다치고 때로 실망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설렘을 잃어간다. 하지만 그 크기만큼 편안함을 쌓아간다. 주변에 좋은 이들이 많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흠 없이 만들어진 끈끈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의 전화기가 오늘까지 아무런 흠집도 없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내 마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을 것이고 떨어뜨린 순간 마음도 꽤 불편했을 것이다. 다툼 한번 없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언제까지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다툼은 작은 상처로 남을 수 있지만 조금 더 편하고 진한 관계로 가는 다져짐의 시간이다.

흠 없이 다져지는 좋은 관계는 없다. 작은 흠집이 몇 개 생겼다고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지는 않는다. 오래된 물건들에 늘어가는 얼룩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람 사이의 크고 작은 불편한 시간은 관계가 다져지는 과정이라 믿는다.

흠이 많더라도 단단한 관계를 늘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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