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외암 민속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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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전윤선
외암마을/ⓒ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전윤선 더인디고 집필위원

너무 오래전 여행이라 기억도 희미해 간간이 생각난다. 어스름 내리는 저녁, 얼핏 생각나는 것은 마을 입구에 물레방아가 돌고 초가집과 기와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굴뚝에는 하얀 연기 흰 구름처럼 하늘로 올라가며 마을 곳곳에 밥 짓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조선 시대로 순간이동 한 것 같았다. 어릴 때 살던 동네도 초가집과 기와집, 슬레트집, 2층 양옥집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지만, 사극에서처럼 모조리 조선 시대 가옥 형태는 드물었다. 초가집도 신기했고 사람이 거주하는 것도 의외였다. 조선 시대 마을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민속촌이나 양동마을, 낙안읍성 정도였다.

외암마을 전체가 초가집과 기와집을 이룬 것이 특이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마을이어서 마음속에 저장한 곳이어서 가끔 생각났다. 그 후 외암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전철이 온양온천역까지 운행되면서부터다. 휠체어를 타고 기억을 더듬어 숨은 그림 찾듯 외암마을로 향했다.

외암마을 풍경_초가집/ⓒ전윤선
외암마을 풍경_초가집/ⓒ전윤선
마을 건너편에서 본 풍경_기와집/ⓒ전윤선
마을 건너편에서 본 풍경_기와집/ⓒ전윤선

그때만 해도 장애인 콜택시가 없는 시절이어서 휠체어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용기와 무모함으로 무장한 뚜벅이 여행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외암마을까지 지도를 보며 물어물어 보도와 차도 구분 없는 길을 걸어갔다. 외암마을 가는 길은 사방이 논과 밭이었다. 논두렁엔 쑥이 지천이었고 달래, 냉이, 미나리도 가득했다. 함께 가는 친구는 휠체어에서 내려 쑥과 냉이를 뜯고 싶어 했지만 다시 휠체어로 올라갈 길이 없어 포기하고 외암마을로 이동했다. 강산이 몇 번 변했어도 그날의 각인된 외암마을은 그다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장애인 화장실도 없었고 음식을 파는 곳도 없었다. 단지 마을 입구에 동네 할머니가 가끔 찾아오는 여행객을 상대로 개떡을 파는 것이 전부였다.

12년이 흘러 다시 찾은 외암마을. 2018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되면서 물리적 접근성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장애인 콜택시 즉시콜이 운행되고 있다. 광덕산과 설화산 아래 자리 잡은 외암 민속마을은 주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실제 거주하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장승과 솟대가 여행객을 맞고, 물레방아도 여전히 돌고 있다. 외암마을은 초가와 한옥이 돌담을 따라 어우러진 마을이다. 오백 년 세월의 깊이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눈 앞에 조선 시대 풍경이 펼쳐진다. 마을 전체가 오래된 야외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래된 마을이지만, 골목길 곳곳이 평평한 흙길이 잘 다져져 휠체어 타고 걸어도 부담 없고 흙길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마을 앞은 논과 밭이고 뒤로는 광덕산과 설화산이 분지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어 아늑한 마을이다. 6.3km의 자연석 돌담이 보존 중이어서 돌담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돌담길/ⓒ전윤선
돌담길/ⓒ전윤선

평일이라 여행객은 많지 않고 농번기라서 마을 주민은 분주히 오간다. 마을 여행에는 지켜야 할 예절이 많다. 문 닫힌 집을 함부로 들어가거나 시끄럽게 떠들어도 마을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주민들 동의 없이 인물사진을 찍어도 실례이다. 예절을 잘 지키는 여행자가 인류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가옥은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등 택호가 정해졌다. 교수댁, 아산건재고택, 풍덕댁, 신창댁도 있다. 돌담을 따라 걷다가 송화댁으로 갔다. 송화댁은 조선 후기 송화 군수를 지낸 이정현의 집이다. 송화댁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집이다. 지금도 마을 뒷산 설화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마당으로 끌어들여 연못의 정원수나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다. 마당에 연못과 물길가는 적당히 굽이쳐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살렸다. 물길 주변은 작은 돌을 얕게 쌓아서 마치 산속에서 계곡을 만난 듯하다. 정원의 수목도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를 심어 친근감을 들게 했다.

초가집 가호는 재성이네, 솔뫼집, 소롱골, 덕현이네 등으로 불린다. 초가집은 해마다 지붕을 개량하는 이엉을 얹는 행사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소일거리 삼아 조청과 된장, 고추장을 만들어 판매한다. 집마다 장맛도 다르고 집안 한쪽을 카페로 개조해 사용하는 곳도 있다. 마을을 샅샅이 둘러보며 담장을 넘어온 꽃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마을 뒤쪽 송암사로 발길을 옮겼다. 송암사 가는 길은 동그랗고 탐스러운 파꽃이 얕은 담장 아래 활짝 피어 발길을 붙잡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파 값이 금값이라며 파테크까지 유행했지만 봄이 오면서 팟값은 뚝 떨어졌다. 돌담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파꽃에 카메라 셔터가 저절로 눌러진다. 송암사로 올라가는 길가엔 색색의 연등이 부천님 오신 날이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송암사는 설화산 아랫자락에 둥지를 틀어 마을 가까이에 있다. 늘 그렇듯 송암사 대웅전에도 휠체어 사용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접근할 수 있다. 사찰 주변엔 저수지도 있어 물결이 잔잔히 일렁인다. 호수 둘레는 산책하기 딱 좋은 코스다.

주변을 둘러보고 마을로 내려와 저잣거리로 발길을 이어갔다. 저잣거리는 음식점과 카페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열린 관광지로 선정되면서 장애인 화장실, 식당, 주차장까지 접근성 개선에 관광약자도 많이 찾는다. 양귀비꽃 피는 계절, 외암 마을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봄 직하다.

장애인 화장실/ⓒ전윤선
장애인 화장실/ⓒ전윤선
저잣거리 까페/ⓒ전윤선
저잣거리 까페/ⓒ전윤선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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