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있으니 나가라”… 혈액투석 신장장애인, 고용차별 맞서 2심도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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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장애인 부당해소 사건 2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장애인이니까 나가세요” 이래도 해고정당?, 노동위원회 OUT 등의 글자가 쓰여있다. Ⓒ더인디고
▲신장장애인 부당해소 사건 2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장애인이니까 나가세요” 이래도 해고정당?, 노동위원회 OUT 등의 글자가 쓰여있다. Ⓒ더인디고
  • 서울고법 “건강문제 고지의무 없기에 지병 숨겼다 볼 수 없어”
  • “고용 현장에서의 차별, 좋은 선례”… 장애계, 2심 판결 ”환영“
  • “중노위·버스회사, 항소심서 멈추라” 경고 “한목소리”
  • 원고 “회사 압박 있어도 복직해서 끝가지 이겨낼 것”

[더인디고 조성민]

버스 운전사로 일하다 장애를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신장장애인 강성운씨가 2심에서도 승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오늘(5일) 오후에 열린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항소심에서 피고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와 주식회사 코리아와이드 포항(버스회사)가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강씨에 대한 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원심의 판단을 유지한 것.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경북노동인권센터,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5일, 신장장애인 부당해고 사건 2심 재판이 끝난 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경북노동인권센터,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5일, 신장장애인 부당해고 사건 2심 재판이 끝난 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원고 강씨는 2019년 2월 10일 버스회사에 운전기사로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는 강씨가 주 3회 혈액투석을 받는 신장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서면통지조차 없이 ‘장애인이니깐 나가세요’라며 채용을 취소했다.

강씨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그를 우선 복지시킨 후 다시 4일 만에 내용증명과 함께 2차 해고통보를 했다. 강씨가 ‘만성신부전과 정기적인 혈액투석을 받기 때문에 시내버스 기사 업무를 수행하기가 부적합다’는 이유다.

이에 강씨는 지노위에 이어 중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지만 모두 기각됐다. 노동자의 편에 서야 할 행정기관이, 오히려 ‘강씨가 장애로 인해 버스 안전운행에 부적합’하기에 채용거부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강씨를 비롯한 장애인단체 등은 이번 사건을 고용에서의 장애인차별이라고 판단, 중노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냈고, 마침내 올해 1월 14일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고(회사)가 강씨의 채용을 거부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피고인 중노위와 보조참가인 버스회사는 즉시 항소했으나 2심도 강씨의 손을 들었다.

중노위나 회사가 상고하지 않으면 강씨는 다시 시내버스를 운전할 수 있게 된다.

강씨는 더인디고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근로자들을 하찮게 생각하는 것 같다. 회사는 저한테 (입사 당시 혈액 투석을 고지 안했다고) 신뢰를 깼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신뢰를 깬 것은 회사였다”며 “(회사 측이) 상고한다면 또 맞설 것이고, 포기한다면 바로 복직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여러 압박이 있겠지만 싸울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소한 기분은 어떤지에 대해 “어안이 벙벙하다. 함께해준 변호사와 여러 단체 관계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라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2심에서 승소한 강성운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2심에서 승소한 강성운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한편 강씨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오월 곽예람 변호사에 따르면 회사는 ‘강씨가 면접 당시 신장장애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고 건강상 문제가 없다고 답변한 것은 노사 간 신뢰관계를 깨뜨린 것으로서 본채용 거부의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면접 시 직장생활의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건강상 문제까지 고지할 의무는 없기에 지병을 숨겼다고 볼 수 없다. 설사 혈액투석을 받더라도 직장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증상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법원은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회사는 원고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가 있으므로 투석치료에 따른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이는 버스 운행 업무의 성질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므로 회사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거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생긴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곽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2조의 채용 전 장애여부 조사 및 의학적 검사 금지에 비추어본다면, 회사는 직무의 본질과 무관한 장애 및 건강문제를 질문할 수 없고, 노동자도 답변할 의무가 없음을 알 수 있다”며 이번 판결의 의미를 부여했다

곽 변호사는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아직 모든 영역에 대한 차별을 규율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엄연히 실정법으로 존재하고 또 그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음”을 전제한 뒤, “회사는 무용한 상고절차를 통해 또 당사자를 괴롭히지 말고, 행정기관인 중노위도 잘못된 판정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곽예림 변호사(좌), 조미연 변호사(우) Ⓒ더인디고
▲곽예림 변호사(좌), 조미연 변호사(우) Ⓒ더인디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는 “원고 측이 주장한, ‘투석치료를 받는 신장 장애인은 안전하게 버스를 운행할 수 없다’는 식의 이런 ‘말’이 너무나 익숙하다”며, “한 사회적 기업가가 청각장애인에게 ‘문자통역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감사히 생각하라’는 ‘말’, 또 척수장애인을 허리에 무리가 되는 부서로 배치해놓고서는 ‘경증인 당사자보다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는 부서인 만큼 차별이 아니다’고 한 대형마트 관계자의 ‘말’이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애석하게도 ‘장애 때문’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장애인을 차별한 게 아니라고 끝나는 말들은 장애인을 차별한 자들의 공통적인 대답”이라면서 “‘장애인이니까 나가세요’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은 어쩌다 마주친 일이 아니었기에 고용에서의 차별이 인정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김영희 상임대표 Ⓒ더인디고
▲박김영희 상임대표 Ⓒ더인디고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3년이 지났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에 대해 제대로 모니터링이 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2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싸워,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법인만큼 이번 재판을 통해 제2, 제3의 원고들에게 좋은 판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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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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