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의 TheWorldGO] 시청각장애인의 색과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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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인 김예지님 이야기 다룬 다큐멘터리 예고편 화면 캡처/출처: CGV홈페이지
▲시청각장애인 김예지님 이야기 다룬 다큐멘터리 예고편 화면 캡처/출처: CGV홈페이지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두 사람이 팔을 잡고 함께 걷는다. 서로의 손과 손가락을 만지고,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나눈다. 친밀한 사이에서만 보일 법한 이 모습은 시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2016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일할 당시 ‘장애청년드림팀’의 ‘달팽이 날다’팀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연수를 다녀왔다. ‘달팽이 날다’는 시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이뤄진 팀이었는데, 시청각장애청년들은 각각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갖고 있었다. 손바닥에 필담, 눈앞에서 수어, 촉수어, 귓속말, 점화 등 각각의 잔존 감각과 기반 장애에 따라 방법이 다양했다. 공통적인 것은 시청각장애인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거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종종 소식을 주고받는 청년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속은 어쩌면 언어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16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장애청년드림팀’의 ‘달팽이 날다’팀의 연수 모습ⓒ김소영
▲2016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장애청년드림팀’의 ‘달팽이 날다’팀의 연수 모습ⓒ김소영

IDA(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가 코로나19 유행 속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시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소개한 콘텐츠를 보았다. 무엇보다 촉각을 이용하여 의사소통해야 하는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코로나19의 감염위험이, 아주 간단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의사소통마저 마비시킨다는 것이었다. (참고: https://www.internationaldisabilityalliance.org/content/experiences-deafblind-amid-covid-19-outbreak)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위한 국제비영리단체 WFDB(World Federation of the Deafblind)는 세계 시청각장애인의 현황과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4년에 한 번 세계 시청각장애인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보고서는 시청각장애인이 전세계 인구의 0.2~2%에 해당한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빈곤, 차별, 교육, 건강, 정치참여, 사회생활 등에 있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음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문제해결을 위한 권고와 사례들도 함께 소개한다. (참고: https://wfdb.eu/wfdb-report-2018/) 현재는 2차 보고서 작성을 위해 2월 14일까지 글로벌서베이를 진행 중이다. 조사에는 장애인당사자 혹은 장애인단체 종사자 등의 관계자도 참여할 수 있다. (참여 링크: https://wfdb.eu/wfdb-report-2022/)

한편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함을 원칙으로 하며 시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소수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접근권, 장애여성, 교육에 대한 일반논평에서는 다음과 같이 시청각장애인을 특정 언급하여, 소수장애인으로서 시청각장애인의 취약성과 그들의 권리 보장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33. … 특히 청각장애여성, 시청각장애여성과 지적장애여성은 고립과 의존, 억압에 의해 폭력과 학대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일반논평 제3호 장애여성)  

35(c) … 정규 학교 과정 내외 모두에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혹은 시청각장애인에게 개인적인 학습과 사회 발달을 최대화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의사소통 언어와 방법, 도구를 활용한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일반논평 제4호 교육)

그렇다면 대한민국 시청각장애인의 현황은 어떨까?

2016년 당시 ‘추정치’였던 시청각장애인의 수는 여전히 추정치에 머물러있고, 일관성 있는 공식용어 역시 마련되지 않고 있다. 맹학교나 농학교에서도 그들에 대한 맞춤형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2022년 1월 25일 김예지 국회의원이 발의한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에 관한 법률안’ (참고: https://theindigo.co.kr/archives/28889)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은, 2016년 ‘달팽이 날다’ 팀이 요구했던 내용이기도 했고, 2000년대 초반 시청각장애인 김예지 씨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오래전 짚어졌던 문제들이기도 했다. 세상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데, 시청각장애인의 시간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도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민간 영역에서의 관련 연구와 당사자 발굴을 위한 활동도 이뤄지고 있다. ‘손잡다’라는 시청각장애인 자조모임이 구성되었다가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가 설립되기도 했으며, 늦었지만 정부차원의 실태조사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국시청각장애인협회 조원석 대표가 시청각장애인이 ‘보라색’ 같다고 표현하는 인터뷰를 봤다. 삼원색 중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붉으스름한 색이나 푸르스름한 색이 아닌 새로운 보라색이 되는 것처럼, 시청각장애인도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색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색의 장애라는 의미에서였다. 보라색 같은 시청각장애인이 고유의 특성을 존중받고, 그들 모두의 시간이 각자의 속도로 흐를 수 있다면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 쯤이야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선임, 2014년부터 장애청년 해외연수 운영, UNCRPD NGO 연대 간사 등을 하면서 장애분야 국제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유롭게 글도 쓰며 국제 인권활동가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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