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환의 끽다거] 수어연설, 대선 후보들에게 의무화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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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이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등에 수어통역사 배치를 청원하고 있다.ⓒ더인디고
▲2020년 12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이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 등에 수어통역사 배치를 청원하고 있다.ⓒ더인디고

[더인디고 = 김철환 집필위원]

디언디고=김철환 집필위원
▲김철환 더인디고 집필위원

지난주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유세 현장의 상황이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를 지지하기 위하여 농인들이 연단에 올랐다. 농인들은 후보를 향하여 수어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후보의 반응이 없자 재차 인사를 한다. 농인과 눈빛이 마주쳤지만 후보는 무심하게 바라만 보았다. 그때 청인(聽人) 여성이 다가오고 후보는 그 여성과 살갑게 악수를 했다.

후보가 농인이 수어로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하지는 않았을 터, 청인 여성에게 살갑게 인사를 하면서, 수어를 모르더라도 고개를 숙여 응대를 해주면 좋았을 것을 말이다. 후보에게 외면당한 당시의 농인들이나 청중으로 있었던 농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 안타까움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후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농인을 챙기거나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등 신경을 쓰는 후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행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도 다르지 않았다. 수어통역사를 대동하는 등 다른 후보들에 비해 농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장애인 단체에서 청와대에 수어통역사 배치를 요구해 왔다. 청와대 춘추관과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할 때 수어통역사를 배치해달라고 말이다. 이러한 요구가 4년을 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유사한 의견을 냈음에도 묵묵부답이다. 장애인 단체의 요구로 정부의 브리핑과 국회 기자회견장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었지만 청와대만 요지부동이다.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수어에 대한 정책 마련을 요구하며 ‘수어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사진: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수어에 대한 정책 마련을 요구하며 ‘수어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사진: 김철환)

지난해 캐나다에서는 매리 사이먼(Mary Simon)이 총독(영국 여왕 대리)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논란도 있었다. 사이먼은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이라 영어와 이누이트족 언어는 잘 구사했지만 불어는 그러지 못해서이다. 이 논란은 사이먼 총독이 ‘불어를 계속 공부하겠다.’고 공개 약속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캐나다는 2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다. 1969년 7월 공용어법(Official Languages Act)이 만들어지면서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것이다. 이 법률은 캐나다 연방 법원은 물론 의회, 연방의 모든 기구 등에 적용되고 있으며, 언어에 의한 차별도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총리가 영어로 브리핑을 하고 불어로 다시 브리핑을 한다. 대통령선거라고 예외는 아니다. 후보자들이 영어로 토론을 하고 불어로 토론하는 경우도 있다. 즉 캐나다에서는 공용어의 하나인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면 정치 활동을 하기 힘들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도 대통령 후보라면 수어를 어느 정도는 구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수화언어법’이 2016년 2월에 제정되어 수어가 우리의 언어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었으니 말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면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을 위하여 수어로 메시지를 전달할 의무가 있어서이다.

지난 주 유세 현장의 해프닝은 후보에게 잘못이 있다. 이보다 근본적인 것은 정치인들이 장애인 문제를 ‘관심 혹은 배려’에 기대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별로 없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들이라면 한 토막 연설 정도는 수어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캐나다처럼 두 개의 언어로 토론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메시지는 수어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된 이후 연설할 때 수어통역사를 대동하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그래야 수어의 존재가 살아나고 농인들의 권리도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어서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장애인 당사자의 눈높이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장애인단체 활동가입니다. 여러 활동을 해 왔지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 부족함으로 허허벌판 같은 길을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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