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署 자진 출석한 활동가들 “국가권력의 불법행위 모르쇠에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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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경찰 조사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전장연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경찰 조사에 앞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전장연

  • 편의시설 미비로 전장연 조사, 남대문경찰서로 이관
  • 문애린·이규식·이형숙 대표 우선 출석
  • 박경석 대표 “김광호 청장에 달려… 조건부 수용”
  • 출근길 지하철 투쟁 재개… 장애인예산안 짚을 것

[더인디고 조성민]

”제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창피하십니까? 무섭습니까?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진짜 범죄자는 장애인을 평생 집과 시설에 가두고 고립시킨 국가권력입니다. (중략) 억울합니다. 조사를 받아서 억울한 것이 아니라 범죄자로 몰려 조사를 받을 거면, 그때 단 10분 아니 1분이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더 높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전차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 출석요구를 받아온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 소장 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1일 남대문경찰서를 찾았다.

▲전장연 활동가들이 31일 오후 2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전장연 활동가 자진출석 조사 일부수용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전장연
▲전장연 활동가들이 31일 오후 2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전장연 활동가 자진출석 조사 일부수용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전장연

경찰조사에 앞서 활동가들은 오후 2시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등에 명시된 기본권을 지키지 않은 국가권력, 그리고 자신들을 범죄자 취급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오히려 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위반했다”고 일갈했다.

전장연 활동가 26명은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모두 36건의 사건으로 경찰 출석요구를 받고 있다. 오늘은 문 소장을 비롯해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대표와 서울장차연 이규식 대표 등 세 사람이 출석 조사를 받는다.

이형숙 대표도 경찰 조사를 받기 전 “조사 자체가 억울한 것이 아닌 국가의 불평등과 차별로 인해 조사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우리만의 이동이 아닌 법에 명시된 모두를 위한 이동과 평등을 위해 21년을 싸워왔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이유로 조사받으라 해서 (혜화, 종로, 용산)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하지만 국가가 법에 명시된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조사를 거부했더니, 전장연 관련 모든 조사를 남대문경찰서로 몰았다”면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만, 그것도 우리가 어디에 살든 남대문경찰서로 모여야만 하나? 법 앞에 평등하다면서 정작 법을 지키지 않은 국가를 향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한편 전장연은 장애인권리 실현을 위한 입법과 예산 등을 요구하며 작년 12월 3일부터 지하철 선전전과 집회 등을 전개해 왔다. 어제(30일)는 삭발투쟁 100일째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김광호 서울청장은 지난 6월 20일 취임식 일성으로 전장연 시위를 겨냥 “불법행위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전장연에 따르면 김광호 청장의 발언 이후 서울 지역 6개 경찰서(혜화, 종로, 용산, 남대문, 영등포, 수서)와 지방경찰서의 출석요구가 매일 쇄도했다. 이에 ‘지구 끝까지 도망갈 생각도, 할 수도 없다’며 지난달 14일, 19일, 25일 각각 혜화·용산·종로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하지만 해당 경찰서를 포함해 서울경찰청 산하 31곳 중 10곳은 건물 내 층간 이동을 위한 승강기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청 측은 장애인등편의법 제정(1998년) 이전에 건립됐다는 이유로 불법이 아니라고 하지만, 공공기관이 그것도 법 제정 이후 24년씩이나 고의적이고 지속해서 개선하지 않아 장애인뿐 아니라 다수의 민원인과 변호인, 직원 등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게다가 이들 경찰서에 대한 편의시설을 설치할 생각 대신 승강기가 있는 남대문경찰서로 모든 사건을 이관한 것 역시 꼼수이자 비장애인과 달리 처우하는 불평등이라는 지적이다.

▲31일 오후 2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열린 ‘전장연 활동가 자진출석 조사 일부수용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상임대표가 이동식 철창 안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장연
▲31일 오후 2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열린 ‘전장연 활동가 자진출석 조사 일부수용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상임대표가 이동식 철창 안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오늘 경찰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김광호 청장이 ‘악의적 차별’이라는 모의재판 결과를 수용하고 벌금 3천만원을 내든가, 아니면 서울청 관할 경찰서 등에 편의시설 설치계획을 약속하면, 출석해 조사받겠다”며 조건부 출석조사를 밝힌 데 이어 “악의적인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운 발언에 대해서도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 29일 국회에서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 처벌에 관한 국민참여 모의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장을 맡은 조영선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9조에 의거 “악의성, 지속성 및 반복성, 보복성 그리고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점을 고려할 때 악의적 차별이 인정된다”며 피고인 김광호 청장에게 벌금 3천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한편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예산안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경석 대표는 “지금까지 (장애인권리예산을) 수없이 외치며 요구했다. 일말의 양심있는 권력이라면, 어느 정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에 답변해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러한 바람이 허망하고 비참하게 됐다”면서, “단순 수치 나열에 불과한 거짓 예산이다. 오는 9월 5일 36번째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서 낱낱이 밝히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활동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며, 남대문경찰서 서울시청, 그리고 광화문과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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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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