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목련 필 무렵의 가난한 죽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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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외로운 이의 죽음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고립된 삶’의 결과인 탓에 그 흔적은 추레하고 남은 일상은 누추할 뿐이다. Ⓒ MBC유튜브 갈무리 편집
▲가난하고 외로운 이의 죽음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고립된 삶’의 결과인 탓에 그 흔적은 추레하고 남은 일상은 누추할 뿐이다. Ⓒ MBC유튜브 갈무리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사는 아파트 초입으로 길게 이어진 옹벽을 기대고 목련나무 네 그루가 서로 어깨를 겯고 우두망찰 서 있다. 한겨울 내내 바싹 메마른 가지들이 긴 추위에 지쳤는지 축 처져 있더니 지난주 내내 이른 봄볕에 종두리 같은 꽃잎이 움텄다. 하지만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꽃잎들은 시들었고, 대차게 부는 봄바람에 날려 꽃으로 무성했던 가지들은 다시 헐벗었다.

“에구, 저것들이 어울리질 못하고 따로 떨어져 살려니 계절을 잊은 게야.”

시드는 목련나무를 무추름히 올려다보던 한 노인이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게 목련은 지난한 한 해를 용케 견디고는 고작 삼일의 꽃으로만 남았다.

이른 꽃이 시들 무렵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던 중증장애를 가진 한 40대 초반의 남성과 70대 이모가 싸늘한 시신으로 열흘 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상에 열흘 만에 발견되었다니… 죽음도 서러운데 발견조차 늦어 악취 나는 허접쓰레기가 되어 발견되었다니 삶의 끝이 어찌 이리도 허망하고 초라할까 싶어 명치 끝이 아려왔다.

언론은 이들의 죽음을 가난한 자들의 심상찮은 죽음의 전조인 듯 전했다. 한 아파트에서 두 사람의 시신이 악취로 인해 발견되었는데, 죽은 지 열흘 전쯤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그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 왔으며 전동휠체어를 이용했던 남성은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어 보훈대상자였다는 것 등이 삶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이후 언론은 이들 집에서는 악취가 심해 민원이 잦았고 청소와 활동지원 등 각종 복지서비스를 안내했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행정관청의 궁색한 변명을 대신했다. 결국 장애를 가진 이와 노인이었던 이들 가족의 죽음은 주변 이웃들의 전언과 관청의 대응 노력을 근거로 스스로 고립되어 죽음을 자초했으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살일 것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만다.

어쩌면 이들의 죽음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립’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뿌옇게 먼지가 쌓인 전동휠체어를 통해 죽은 이의 물리적 고립은 짐작할 수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20여 년을 살았을 그의 신산스러운 일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월 받는 보훈 보상금은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지나치게 적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조력이 전제된 활동지원 외에는 이렇다 할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기에도 마뜩잖았을 것이다. 더구나 부모한테 물려받았을 주택이 있고 알량한 보훈 보상금으로 인해 책정될 자기부담금도 버거웠을지 모른다. 또한 전동휠체어를 타기 위해 70 넘은 고령의 이모 조력을 받아야 했다면 외출은 설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심적 부담이었을 테니 고립은 어쩌면 그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었을 수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이모의 사정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니 이들 죽음의 원인은 스스로 자처한 고립이 아니라 고립될 수밖에 없는 일상의 환경은 아닐까. 먼저 숨진 이모 곁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단 한 통화의 전화 구조요청으로도 그는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이후 남은 일상은 악취와 쓰레기로 가득한 집안에 홀로 남는 거였다. 그래서 홀로 남은 그의 선택인 죽음은 오로지 자신만의 결정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세상으로부터의 지워내기였다.

홀로 죽은 이의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는 김완은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고립되어 죽은 이의 흔적은 선명히 남는다고 적었다. “육체가 남긴 조각들은 남아 침대 위엔 검붉은 얼룩으로, 베개에는 머리 피부가 반백의 머리카락과 함께 말라붙어” 살아 있는 이의 육신을 증거하고, “천장과 벽엔 비대해진 파리들이, 이불 속 뒤엉킨 구더기 떼”로 죽은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오롯하게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무리에서 외떨어진 채 맞춤한 계절조차 모른 채 섣부르게 꽃을 피웠다 제풀에 지쳐 시든 목련이야 다시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 설사 이듬해에도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목련에게는 단 며칠만이라도 꽃을 피울 시간이 허락되지만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다’는 이들은 이제 내일조차 없다. 검붉은 얼룩과 말라붙은 머리카락으로만 남은 이들의 텅 빈 영정 앞에 목련 한 송이나마 바쳐 애도할 터다. 그리고 고립에 지쳐가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컴컴한 극장 객석에 고립된 채 요절했던 한 시인의 절규를 전한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 비가2 – 붉은달 중에서…>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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