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34] ① 심명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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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34차 화요집회서 부모연대 충북지부 안미영 제전지회 부회장이 심명숙 회원을 대신해 읽고 있다. ⓒ부모연대
▲18일 34차 화요집회서 부모연대 충북지부 안미영 제전지회 부회장이 심명숙 회원을 대신해 읽고 있다. ⓒ부모연대

[더인디고] 자연 치유도시 제천에서 사는 25살 발달장애 딸을 둔 엄마입니다. 오늘 화요집회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의 보석 같은 딸 혜린에게

너는 오늘 제주도로 4박 5일 자립생활 체험을 떠나고,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여행 가시고, 엄마 혼자 남으니 네가 나한테 얼마나 큰 버팀목과 위로가 되는 존재인지 더 알 것 같구나.

온 세상이 하얗게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 어느 날 너는 우리에게 왔지. 신생아지만 머리도 까맣고 너무 이쁜 모습에 너무 기뻤어. 아기 때는 울지도 잘 않아 순한 줄만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장애가 있다는 걸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아. 오빠도 말을 늦게 해 너도 그런 줄만 알고 지냈지. 그런데 행동하는 것이 너무 달라 검사받아보니 지적장애 판정을 받고 처음엔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어. 하지만 받아들이고 그때부터 온통 너에게 올인해 언어치료실, 작업치료실 등을 다니면서 너의 기능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하면서 다녔지만 큰 효과는 없었어.

학교 역시 학생 수가 많으면 네가 힘들까 봐 제천 인근 시골 학교에 입학시켜 매일 너를 통학시켰어. 집중력이 없어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학생이라 엄마는 항상 교실 밖에 대기하거나 선생님 부재 시 너의 반 수업까지 하면서 초등학교를 너와 함께 다녔었지. 네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아파서 항암 치료할 때는 엄마 껌딱지인 우리 딸이 옆에 오지도 않아 서운했지만, 나중에 네가 그랬지. 엄마가 죽을까 봐 무서워 옆에 못 왔다고 같이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하니?

그런데 혜린아 너는 몰랐지? 누구보다 엄마한테는 엄마를 낫게 해준 일등 항암제라는 것을. 엄마는 그때 너를 놔두고는 죽을 수가 없었단다. 그 당시에는 장애인식에 대한 모든 것이 부족했고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 험한 세상에 너 혼자 남겨둘 수 없었어. 엄마는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고 독하다는 항암치료도 씩씩하게 잘 받고 병도 이겨낼 수 있었단다. 그리고 너를 위해 부모연대의 문을 두드렸고 연대의 일원이 되어 투쟁 현장에 열심히 다녔단다.

항상 밝게 웃고 통통 튀는 매력으로 긍정에너지를 주는 수다쟁이 우리 딸 혜린아. 그런 네가 작년 가을부터 한 번씩 잘 웃지도 않고 멍하니 혼자 있거나 며칠씩 잠도 안 자서 엄마는 걱정되고 애가 탄다. 엄마는 요즈음 어떤 것이 너를 위한 길인지 많은 고민이 되는구나. 우리가 없는 세상에서도 딸의 행복한 일상이 보장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연대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정작 너에게는 바쁘다는 핑계로 잘 챙기지도 못하고 소원해진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단다.

그렇지만 혜린아! 엄마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단다. 지금 당장은 국가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정책안을 들어주지 않고 언제 들어줄 기약도 없어. 이 사회가 지금처럼 되어 있는 시스템 안에서는 비장애인과 평범하게 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발달장애인 너에게는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엄마는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본단다.

우리 딸이 지역사회에서 낮에 직장 다니고, 네가 좋아하는 주간 활동도 하면서 밤에는 주거까지 완벽하게 자립할 수 있는 장애 당사자 개인의 개별적 특성에 맞는 맞춤형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국가가 응답하는 그날까지 엄마는 열심히 활동하고 투쟁 할거야. 혜린아 우리 그날이 올 때까지 엄마는 건강 잘 챙기면서 활동할 테니 우리 딸도 예전에 밝고 통통 튀는 딸로 돌아와 주길 바랄게. 사랑한다.

투쟁합시다. 파이팅!

-2023년 4월 18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34차 중에서–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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