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코로나

0
52
▲코로나19. 사진=픽사베이
▲코로나19.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감기인 줄 알았던 내 몸의 증상들은 말로만 듣던 코로나로 판명되었다. 38도를 오르내리는 열은 해열제를 먹어도 찬물로 씻어도 떨어질 줄을 모르고 목구멍은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건강했던 내가 불과 이틀 정도 만에 잠을 잘 수도 무언가를 먹을 수도 없는 중환자가 되어버렸다.

코로나라는 녀석이 사람마다 겪는 증상도 정말 다양하다 하더니 먼저 겪은 이들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할 만큼 내 증상도 독특했다. 사실 잠 못 자고 침 삼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조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긴 했다.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을 최대한 작은 크기로 잘라서 조금씩 흡입하고 약간의 나아진 틈이 보이면 온몸의 기력을 끌어모아 고통을 참고 약을 삼켰다. 과일 정도가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 그것 또한 먹기 편해서라기보다는 그마저 먹지 않으면 다른 것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일 중에서도 키위나 사과처럼 산성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먹을 수 있는 목록에서 추가로 제외되었다. 배고픔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약도 먹지 않는 내가 병원까지 찾았지만,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조치도 그다지 특별한 건 없는 듯했다. 열을 내려준다는 약도 통증을 줄여준다는 약도 염증을 해소해 준다는 약마저도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코로나의 기세 앞에서 큰 작용을 일으켜 주지는 못했다.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면 빈속에 들어가서 머릿속을 몽롱하게 만들어 준 것인데 그 틈을 노려서 한두 시간이나마 잠은 들 수 있었다. 언제나 아름답게만 들릴 것 같던 노랫소리도 소음으로 느껴지고 걱정되는 마음에 걸려 오는 전화들도 극도로 예민해진 나에겐 귀찮은 괴롭힘으로 느껴졌다. 조물주가 만약 이 상태로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편안히 끝을 맞이할 것인지를 물어온다면 난 내 삶의 지속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할 것 같을 만큼 한순간 한순간이 견디기 힘든 지옥의 고통으로 느껴졌다.

내 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거의 남지 않으니, 시간은 극도로 느리게 흘렀다. ‘다시 나아질 수 있긴 한 걸까?’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닷새쯤 지나자, 호전의 기미가 보이긴 했다. 여전히 목이 아프긴 했지만, 쌀죽 정도를 삼킬 수 있게 되었다. 맛이 느껴지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감격스러웠다. 약을 먹으면 잠시나마 통증이 줄어들기도 했고 덕분에 잠을 잘 수도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소금간이 된 죽을 먹어도 통증은 견딜만했고 김치도 한 조각 정도는 집어 먹게 되었다.

체온계의 눈금이 37.5도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음악 소리나 드라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정 상태도 회복했다. 사탕을 물고 있으면 기침도 잦아들었고 택시를 이용해 출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힘이 빠지긴 했어도 대화가 가능한 목소리를 회복했고 일어서지는 못해도 앉아서는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오래 걸을 수 있게도 되고 드디어 음식의 맛을 느끼며 즐거운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엔 별것 아니라고 느끼던 것들이 하나씩 돌아오는 것이 저절로 감사기도를 외칠 만큼 귀한 것으로 느껴졌다. 코로나 감염 열흘 정도가 지나는 지금 난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고 건강 상태도 체력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고 있다. 심하게 아픈 다음에서야 비로소 느끼지만 내가 가진 일상은 누군가에겐 그토록 바라던 평범함이었다. 하루 세끼를 맛있게 먹는 것도 만나는 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저녁이 되면 잠을 자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느끼고, 노랫소리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많이 아프고 많이 답답했던 건 그동안 누리고 있던 것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었다.

난 아직 회복 중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다시 달렸고 내일은 바벨도 좀 들어보려 한다. 조금씩 돌아오는 일상에 대해 좀 진하게 느껴보려 한다. 코로나는 내게 큰 아픔을 주었지만 잠시 잃어버렸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특별히 불편하지 않은 오늘을 살았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감사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승인
알림
6632a1bada098@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