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골고루 섞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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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밥 ⓒ픽사베이
▲돌솥밥 ⓒ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파리 거리에서 나의 아내가 놀란 것 중 하나는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자주 만난다는 것이었다. ‘똑딱! 똑딱!’ 소리가 나서 돌아보면 시각장애인이 지나가고 뭔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리면 휠체어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 나라는 유난히 장애인이 많은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에서 지팡이와 휠체어를 보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뜻 보면 서울에 비해 장애인 접근성이나 이동권이 더 나아 보이지도 않는데 오전에도 오후에도 몽마르트르에서도 샹젤리제에서도 그들은 다른 이들과 섞여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길을 헤매는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던 어느 청년의 몸짓은 자연스러웠고 저상버스를 오르는 휠체어에 대한 다른 승객들의 유별난 관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사나흘쯤 비슷한 광경을 반복해서 목격하던 아내는 서울과 다른 생경한 장면들에 감동하는 듯했다.

“이 나라는 정말 좋은 나라인 것 같아요. 갈 곳이 있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으니, 장애인들이 이렇게 거리에 많은 거겠죠?”, “저기 또 걸어가요. 저쪽에서도 오네요.”라며 신기한 듯 감탄하는 아내에게 파리는 장애인식 높은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훌륭한 도시로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도시에 사는 인구만 수백만 명, 관광객을 포함하면 하루에도 수천만 명이 오가는 거리에서 하루에 장애인 몇 명쯤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어야만 한다. 전체 인구 중 장애인의 비율을 10%라 하면 백만 명쯤이 움직여야 하고, 휠체어나 지팡이를 이용할 만큼 중증장애인은 그중 10%라고 한다 해도 하루에 10만 명 정도의 장애인은 거리로 나와 있어야 한다.

유난히 피곤하거나 아픈 날이라 어떤 외출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한 도시에 있는 몇만 명의 장애인 중 그 어떤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나오지 못하게 했거나 나올 수 없는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가 좋은 도시라고 말하기보다 이전에 우리가 살던 그곳이 아주 이상한 도시였다고 나는 말했다.

갑질과 괴롭힘이 없는 상사에게 우리가 특별히 착한 상사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지내온 이전의 환경이 매우 비정상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식당의 깨끗한 그릇을 보고 감탄할 필요도 없다. 만약 그런 장면이 놀랍다면 그는 매우 비위생적인 경험들 속에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 상황을 접하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내가 머물렀던 상황들은 아직 정상의 범주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쌀과 콩을 9:1로 섞은 콩밥에서 내 밥그릇에만 콩이 보이지 않는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콩을 한쪽으로 몰아넣는 작업을 한 것이다. 냄비를 기울였을 수도 있고 콩은 몸에 좋지 않다는 모함으로 어느 쪽으로 골라냈을 수 있다. 그것은 정상적인 콩밥이라 부를 수 없다.

파리 거리의 장애인들을 보고 놀라워하던 나의 아내는 아직 고루 섞이지 않은 콩밥 같은 세상에서 살았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콩들이 고루 섞여 있는 게 맞는지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 어떤 힘 있는 사람이 냄비를 기울여 놓은 것은 아닌지 의도적으로 한쪽으로 콩을 몰아놓거나 골라내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다시 잘 섞어야 한다.

수십 명이 타는 버스의 한쪽 자리에 한두 대의 휠체어는 종종 보이는 풍경이어야 한다. 나와 함께 지하철에 오른 수백 명의 승객 중 몇 명쯤 지팡이 들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어야 한다. 전교생이 수천 명인 어느 학교 교실에도 수만 명 모이는 공연장에도 역대급 인파로 북적이는 관광지에도 휠체어와 지팡이 보이는 오늘이 놀라울 이유는 없다. 어느 이국땅에서 만난 거리의 장애인이 놀랍다면 우리가 살고 있던 그 땅은 잘 섞이지 않은 콩밥처럼 뭔가 많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기울어진 냄비는 수평을 맞추고 콩에 덧씌워진 잘못된 편견은 바로잡아야만 제대로 된 콩밥을 만들 수 있다. 소수가 바라는 세상은 착한 사람 좋은 나라가 아니라 정상을 회복한 잘 섞인 콩밥 같은 나라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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