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이 끼친 손해배상, 책임은 ‘보호의무자’… “정신건강복지법 40조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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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대법원 전경 ⓒ더인디고
  • 대법원, 정신장애인 가족의 방화 책임은 ‘보호의무자’
  • 성인 정신장애인의 아버지, 1천5백5십만원 배상해야
  • “10년 전 일본도 폐지… 악용소지 개연성 높아”

[더인디고 조성민]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끼친 손해를 ‘보호의무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를 개정하거나 아예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에 따르면 보호의무자는 피보호인이 치료와 요양을 받게 하거나 정신의료기관 등의 입·퇴원 등을 할 때 협조해야 한다. 특히 제3항은 피보호인인 정신질환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유의해야 할 책임을 보호의무자에게 지웠다.

우리나라 법원도 지난 2016년 7월 인천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 대해 원심에서 적용한 ‘정신보건법(현 정신건강복지법. ‘16.5.29. 전면개정)’ 제21조·22조와 민법 제755조(감독자의 책임) 등을 근거로 민사상 손해배상에 있어서 정신장애인의 보호의무자에 대한 책임을 판단했다.

지난달 29일 대법원 제3부(재판장 노정희 대법관)는 “정신장애인의 보호의무자(아버지) A씨는 피보호인 B씨가 ‘방화’ 등으로 타인에게 위해 할 가능성이 있다는 구체적 위함을 인지했음에도 이를 대비하지 않은 것은 피고인 A씨에 책임에 있다”며 “방화 피해자인 원고 C씨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보호의무자의 감독의무는 정신질환자의 행동을 전적으로 통제하고 그 행동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방지해야 하는 일반적인 의무는 아니다”라면서도 “구 정신보건법 등 관련 법령의 취지, 신의성실의 원칙, 형평의 원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의 의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보호의무자나 부양의무자 등의 감독의무 위반 여부는 피보호인의 생활이나 심신상태, 동거여부, 기존 일상생활이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행동과 그 내용, 특히 A씨와 같이 사전에 방화의 위험과 심신의 상태를 인지했음에도 대비하지 않는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별 사안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연구원은 더인디고의 전화 통화에서 “개별 사안으로 접근하더라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호의무자’ 규정을 근거로 하는 것 아니겠냐”며 “문제는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제40조에도 보호의무자 조항이 그대로 있어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항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00년대 초 ‘보호의무자’를 규정했던 일본조차 ‘보호자’로 개정했다가 10년 전엔 아예 ‘보호자’ 조항도 삭제했다. 우리도 늦었지만 해당 조항을 개정하거나 위헌소송을 통해 폐기함으로써 국가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법 개정 운동에 장애계의 관심과 연대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권 활동가도 전화 통화에서 “해당 판결은 정신장애인, 게다가 성인임에도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처럼 민사 소송에서 보호의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오히려 ‘보호’를 이유로 정신장애인 가족을 정신의료기관이나 시설로 보내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거나 가족해체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판결문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B(88년생, 양극성정동장애)씨는 아버지 A씨 사무실에서 컴퓨터 수리 문제로 다퉜다. 집(아파트)에 돌아와서도 분을 참지 못하자 오후 4시경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수건과 헝겊, 부탄가스를 쌓아놓고 불을 붙였다. 사무실 CCTV에서 이를 목격한 A씨는 아파트로 가서 불을 껐고 B씨를 안정시킨 다음 사무실로 돌아왔다.

A씨는 이후 8시경 일을 마치고 귀가해 B씨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B씨는 둔기를 꺼내 위협했고, A씨는 6개월 정도 함께 살다 독립을 시켜주겠다며 달랬다. 하지만 B씨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질렀고, 아버지는 불을 끄려 해도 둔기로 위협을 당하자 소방서에 신고했다.

불은 옆집 C(원고)씨 아파트에 옮겨붙으면서 해당 아파트 내 가재도구가 불에 타거나 그을린 데다 원고의 가족들은 연기 흡입으로 병원에서 응급치료까지 받게 됐다. 이어 원고 C씨는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 2018년 4월에 열린 2심에서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원고가 입은 손해액 33,618,770원에서 앞서 원고가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보험금 12,780,882원을 뺀 나머지 20,837,888원 중 원고가 청구한 15,500,000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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