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사건, 수사에서 재판까지 일반 사건의 서너 배… ‘피해 장애인, 가해자와 끔찍한 동거’

0
335
▲성락원 학대 사건 수사가 6개월째 이어지자 ‘경산 성락원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경산경찰서가 학대 사건을 방조하고 있다며 조속한 조속한 수사 마무리와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성락원대책위
▲성락원 학대 사건 수사가 6개월째 이어지자 ‘경산 성락원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경산경찰서가 학대 사건을 방조하고 있다며 조속한 수사 마무리와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성락원대책위
  • ‘물고문 학대’ 성락원, 경찰 수사 반년 만에 검찰 송치
  • 사건 마무리까지 진술 오염과 2차 가해 환경에 피해자 방치
  • 경찰청이나 지자체에 학대 대응 전담팀 구성 필요

[더인디고 조성민]

장애인시설에서의 학대 사건에 대해 경찰의 수사 기간은 일반 사건보다 서너 배 이상 걸릴 때가 흔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등 2차 가해 위험에 노출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21년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수사 부서별 사건 1건당 평균 처리 기간이 두 달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시설 내 장애인 학대 사건은 검찰 송치까지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연도별 수사부서별 사건 1건당 평균 처리기간’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연도별 수사부서별 사건 1건당 평균 처리기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 장애인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설에서 가해 종사자와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에 대한 긴급구제 혹은 가해자 직무배제 조치 등 가해자와 피해자의 물리적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이다.

은종군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권익옹호기관의 종사자도 부족하지만, 경찰도 마찬가지다. 수사가 배정되더라도 담당 경찰에게는 여러 사건 중 하나이고 또 사안을 중대하게 접근하지도 않는 실정”이라며 “특히, 진술만으로는 부족한 데다 가해자가 여러 명이면 진술도 다르고, 구체적인 증거까지 확보하다 보면 검찰 송치까지 1년이 걸리곤 한다”고 말했다.

학대가 반복해서 일어났던 장애인 거주시설 성락원 사태와 관련해 지역 장애인단체들이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성락원은 작년 3월 부실 급식과 냉난방 통제, 불량 피복 문제 등으로 경찰에 고발된 데 이어 5월과 8월에는 소위 ‘물고문 학대’ 및 ‘음식 학대’ 등 연이은 인권침해 사건이 외부로 알려졌다. 시설 종사자들의 인권침해는 알려진 시점이 작년 5월이었을 뿐 그 이전부터 지속해 왔다. 더구나 사건이 알려진 이후 인권실태 전수조사 과정에서도 학대가 이어져 충격을 더하기도 했다.

▲제보에 따르면 물고문 학대 피해자 A씨는 이미 4월 다리(사진 왼쪽)뿐 아니라 전수조사가 결정된 6월에는 얼굴(사진 오른쪽)에도 멍 자국이 발견됐다. /사진=성락원대책위
▲제보에 따르면 물고문 학대 피해자의 경우 이미 4월 다리(사진 왼쪽)뿐 아니라 전수조사가 결정된 6월에는 얼굴(사진 오른쪽)에도 멍 자국이 발견됐다. /사진=성락원대책위

이에 경상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해당 인권침해 사건을 ‘학대’로 판정했고, 관리·감독기관인 경산시는 작년 8월에서야 두 차례에 걸쳐 학대 사건 관련 종사자 10명을 경산경찰서에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6개월째 이어지자 ‘경산 성락원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성락원대책위)’는 지난 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경산경찰서가 학대 사건을 방조하고 있다”며, “조속한 수사 마무리를 통해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박재희 성락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더인디고와의 전화 통화에서 “학대 사건이 구체적인 증언 등과 함께 외부로 알려졌지만,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산시가 긴급구제 혹은 행정조치를 하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다. 이후 경찰 수사가 또 6개월째 제자리를 걷는 동안 가해자 중 직무배제 조치되거나 퇴사한 2인 외 8명은 여전히 해당 시설에서 근무 중”이라면서, “일부 피해자를 비롯한 남은 거주인들은 2차, 3차 피해를 받는 끔찍한 환경에 내몰리게 됐다”고 행정 및 사법기관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어 “경찰서를 항의 방문하고 기자회견 등을 하니 경찰은 그제야 ‘10명 중 일부는 수사를 마쳤고, 나머지 물고문 학대 관련 사건 가해자 등은 7일에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면서 “시설 내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 전원에 대한 실형이 결정되거나 시설 폐쇄와 거주인 전원 탈시설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장애인 당사자는 수년간 가해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 어떻게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실제 앞서 고발된 거주인 불량 피복 지급 등 인권유린 사건은 8개월 만인 올해 1월에야 검찰에 송치됐다.

이런 지지부진한 행정관서와 경찰의 수사 사례는 또 있다. 여주시 소재 라파엘의집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또한 여주경찰서가 작년 9월 사건을 접수하고도 반년이 되어서야 15명을 입건했다. 해당 시설은 CCTV를 설치한 곳이다. 경찰은 CCTV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이후 진행 상황에 대해선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일부 가해 종사자는 업무에 복귀했고, 처벌은 단 2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리되지 않은 채 시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동거해야 했고, 그러는 사이 진술 오염과 2차 가해 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현행 장애인 학대 대응 시스템으론 역부족과감하고 혁신적인 대응책 내놔야!

장애인 인권침해 대응을 위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2017년부터 설치되어 현재 18개가 운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옹호기관 종사자는 4명 정도에 불과해 학대 조사와 피해자 지원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조사 영역의 법적 한계 등으로 종사자들은 가해자로부터 신변 위협까지 받으면서 이직률도 높아지고 있다. 지속성과 전문성도 기대하기도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일선 경찰서에는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과 ‘학대 전담경찰’이 배정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 사건을 경우 직접 수사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대부분 사안에 따라 일반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과나 경제사범을 다루는 부서가 담당한다.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피해자와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2020년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장애인 10명 중 7명이 발달장애인이다. 피해 장애인의 9명 이상은 중증장애인이다. 장애인학대 사건에 대한 대응 체계가 전면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학대 피해장애인 장애유형(좌)과 정도(우). 자료=장애인 2020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학대 피해장애인 장애유형(좌)과 정도(우). 자료=장애인 2020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또 다른 문제는 수사를 마무리했더라도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가해 종사자를 직무 배제할 경우 노동문제 등 소송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 그렇다 보니 해당 시설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지자체조차도 수수방관할 때가 있다”면서 “적어도 지자체 조사단계에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정도로 구체적인 학대가 드러나면, 과감하게 직무배제 시킬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탈시설 로드맵에 따른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즉시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동운 전 서울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학대 사건이 발생한 시설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해 실효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광역 단위 경찰청에 장애인, 아동, 노인 등 학대 전담팀을 구성해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 전 관장은 그러면서 “이 방안이 어렵다면 지자체 단위의 통합적인 학대사건 대응센터 설치도 한 방안이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중심의 특별사법경찰관을 구성해 수사하고, 반면 지역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피해자 진술 및 지원을 맡는 것도 대안”이라면서 “충남 논산시의 학대통합대응기구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논산시는 2020년 아동학대조사 업무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시·군·구로 이관되자 지난해 5월 학대신고대응센터를 설립했다. 시는 기존 3명 수준의 전담공무원을 9명까지 늘리고, 경찰관 1명을 더해 10명으로 팀을 구성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해 초동 대응부터 경찰뿐 아니라 아동, 장애인, 노인, 여성 등 각 관련 기관들과 공동 협력하고 있다.

학대 사건 발생 시 신속하게 가해자와 피해 장애인을 분리하고,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는 피해자 보호 중심의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기 정부는 개선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__________________

[관련 기사]

주변에 장애인이 학대를 당하고 있거나 의심되는 상황에 있다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장애인학대 신고전화는 1644-8295(카카오톡, 문자 등) 또는 112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승인
알림
662d1d0527c9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