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등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해야… 법원 “바닥 면적 기준 시행령,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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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출입구 어디에도 휠체어 사용자가 출입 가능한 경사로가 없다. ⓒ더인디고
▲ 편의점 출입구 어디에도 휠체어 사용자가 출입 가능한 경사로가 없다. ⓒ더인디고
  • 서울지법, 바닥 면적 300제곱미터 이상 의무화 “차별”
  • GS리테일 등 상대로 한 차별구제 소송 일부 승소
  • 국가 및 기업 상대 손해배상은 ‘기각’
  • ‘모두를 위한 1층이 있는 삶’ 첫 단추
  • “정부, 50제곱미터 면제 시행령 입법예고”에 엄중 경고
  • GS리테일 항소 가능성… 최종 판결까지 법적 다툼 불가피

[더인디고 조성민]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기준을 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한성수)는 10일 휠체어 사용자 등 원고들이 GS리테일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공중이용시설 이용 및 접근에 대한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손해배상 소송은 기각 결정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더인디고
▲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더인디고

현행 장애인등편의법은 편의점, 식당 등 소규모 근린생활시설의 편의시설 의무 대상을 300제곱미터(약 90평) 이상이라는 바닥 면적에 기준을 두고 그 이하일 경우에는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면제시키고 있다.

2019년 국가통계포털 자료에 따르면 전국 편의점 4만3975개 중 300제곱미터 이상에 해당하는 편의점은 1.8%인 830개에 불과하다. 전국 음식료품점 또한 10만7505개가 있지만,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소매점은 2.2%인 2391개다. 법에서 정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이동 약자들은 곳곳의 널린 가게조차 접근하기 어렵다는 결과다.

소송대리인단으로 참여한 최초록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 이전인 1998년 이전 건물은 아예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서 제외인 데다 바닥 면적을 300제곱미터로 묶다 보니 서울시만 해도 95% 이상의 생활편의시설 등은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없다”면서, “휠체어나 유아차 사용자 등은 집에서 나와 마스크를 사거나 커피를 마시고, 또 밥을 먹으러 가려 해도 갈 수 없는 현실인데,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면제하는 기준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고 소송 배경을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지연대 등 장애인 단체와 공익변호사들은 2018년 4월 11일, GS리테일(편의점), 투썸플레이스(카페), 신라호텔(숙박), 그리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라는 적극적 조치명령을 구하는 취지의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 당사자로는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등 휠체어 사용자 2명과 지팡이를 사용하는 노인, 유아차 사용 영유아 어머니 등 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편의점과 카페 운영을 대표하는 해당 기업 등에 ▲통행 가능한 접근로▲단차 없는 출입구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호텔 장애인 객실 설치 등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한 공간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또 소송 대상 업체 3곳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각 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 진행 과정에서 호텔신라, 투썸플레이스와는 2020년 2월 강제조정 등이 이루어져, 이의 신청을 한 GS리테일 및 국가와만 본안 소송이 진행됐다. 투썸플레이스와 신라호텔은 법적 의무가 없어도 차별적인 시설 등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한 것.

반면 GS리테일은 바닥 면적 기준 300제곱미터 미만 공중 이용시설에 일률적으로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면제해주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근거로 출입구에 휠체어 통행이 가능한 경사로 등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지법은 오늘(10일) “장애인등편의법(제7조 편의시설 설치대상) 시행령이 장애인의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한 동 법의 취지를 벗어난 데다, 장애인의 행복추구권 침해와 평등원칙에도 반한다”면서 “피고인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직영점뿐 아니라 가맹 편의점에도 편의시설 설치할 것”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판결에 따르면 GS리테일은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안에 직영 편의점 중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 증축, 개축된 곳에는 장애인 통행이 가능하도록 접근로를 설치하고, 단차 등은 제거하거나 경사로 등 편의시설 설치 등 출입이 가능하도록 시정조치 했다. 다만, 만약 이러한 조치가 불가능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이동식 경사로를 준비하거나 호출 벨 등 대안적 조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가맹계약 편의점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의 ‘편의시설 설치 지침’을 마련해 1년 안에 개선 권고를 하되, 점포환경개선 비용 중 20% 이상을 GS리테일이 부담하도록 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및 공익변호사단체 등은 1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소송 1심판결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및 공익변호사단체 등은 1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공중이용시설 접근 및 이용에 대한 차별구제소송 1심판결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더인디고

이에 장추련 등 소송 참여 단체 및 공익변호사그룹은 서울지법 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고 전제한 뒤 “GS리테일이 항소로 맞설 것이 아니라 1심 결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는 “수십 년 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시행령만 만지작 거린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300제곱미터 기준을 50제곱미터로 변경하는 시행령 개정령을 입법 예고한 것은 또다시 의무대상시설을 면제해주려는 기만적 꼼수”라며 “당장 멈추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한편 소송대리인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의 예외조항은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상위법령을 위반한 위법·위헌적 조항임을 확인한 것”이라면서 “특히, 피고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 대부분 매장에 휠체어사용 장애인 등 보행이 어려운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음에도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는 행위는 차별임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 변호사는 이어 “재판부가 대한민국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제정할 때 합리적 이유 없이 면적과 시기에 따른 예외를 광범위하게 인정한 것 자체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의 규정에 반하는 차별임을 인식하게 한 것”이라면서 “이번 판결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공간, 모두의 1층이 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의미 있는 첫 단추”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번 판결이 바닥 면적 기준과 상관없이 모든 예외 적용을 차별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현행 시행령 기준이 300제곱미터이기 때문에 법원은 이에 대한 기준만 적용한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현재 정부가 입법 예고한 50제곱미터 기준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한 GS리테일이 항소할 가능성이 커 향후 최종 판결까지는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한 지속적인 법적 다툼과 함께 생활편의공간의 접근권 확보를 위한 싸움이 계속될 전망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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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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