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시설사회, 폭력의 역사는 종언되었을까?

0
104
▲마더 테레사는 빈곤자들을 위한 성녀가 아닌 ‘빈곤포르노’를 이용한 근본주의 종교사업가 폭로가 있었지만 그의 우상화는 여전하고, 형제복지원 시설수용이 국가폭력이 인정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설은 1,539개이며 29,086명이 수용되어 있다. ⓒ 더인디고 편집
▲마더 테레사는 빈곤자들을 위한 성녀가 아닌 ‘빈곤포르노’를 이용한 근본주의 종교사업가 폭로가 있었지만 그의 우상화는 여전하고, 형제복지원 시설수용이 국가폭력이 인정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설은 1,539개이며 29,086명이 수용되어 있다.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노벨평화상을 받고, 20세기 성녀로 추앙받았던 테레사 수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기희생의 화신이 아니라 다국적 선교사업체의 수장이며, 근본주의 종교사업가에 지나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들은 믿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는 1994년 의학전문지 <랜싯>의 편집장인 로빈 폭스 박사가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처참한 폭력적 상황을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테레사 수녀의 악마성을 엿본다. 폭스 박사는 테레사 수녀가 45년간 봉사하고 있다는 그 곳에서 삭발한 채 한 방에 오륙십 명씩 수용돼 죽어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진통제조차 없이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광경을 목도하고, 왜 환자들의 고통을 방치하냐고 관계자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돈과 일손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댔지만 당시 이곳에 집중된 기부금은 미국 뉴욕 브롱크스 선교회의 한 당좌계좌에만 무려 5천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면서 경악했다.

결국 테레사 수녀는 빈곤을 이용해 동정심 많고 어수룩한 사람들과 기업들이 더 많이 기부할 수 있도록 신화를 만들어갔으며 인도 콜카타의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의 가난한 환자들은 동정을 유발하는 촉매제였다. 이들 가난한 자들은 테레사 수녀의 “신의 뜻”으로 제대로 된 치료조차 한번 받지 못한 채 죽어갔지만 정작 테레사 수녀는 서구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에서 치료받았다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105개 이상의 나라에서 500개가 넘는 수도원을 운영했고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는 4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평신도 일꾼도 4만 명이 넘었다. 그 외에도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가진 명성을 독재자들의 면죄부에 이용했고, 악덕 기업가들이 돈을 버는 데 자신을 이용하도록 했다. 1984년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수천 명이 즉사한 유독가스 참사가 일어났을 때 분노한 유족들에게 테레사 수녀는 “용서”를 강권하기도 했다고 히친스는 폭로했다.

도대체 뭘 용서하란 말인가?

지난 8월 24일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정부와 국회에 피해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권고는 국가기구가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시설에 수용해 무차별적인 국가폭력을 공식 확인한 35년 만의 진상규명이다.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직접적인 강제 수용과 폭력은 민간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이 대행했다. 형제복지원은 1960년 부산 감만동에서 형제육아원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이후 주례동에 자리 잡기까지 확장 이전을 거듭했으며 모든 건물 공사를 수용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다고 한다.

1981년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씨는 서울시 등 전국 대도시에 신체장애인을 비롯한 걸인들의 구걸행위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단속을 지시했다. 또한 88서울올림픽 개최 이전 서울 거리에 걸인이 없도록 할 것, 걸인 중 정상적 사람이 40% 되는데 대공적 용의점 있는지 검토할 것, 수용된 걸인은 지방장관 책임하 농촌 일손돕기 등 농민 지원 등을 지시했다. 이렇게 확정된 ‘구걸행위자보호대책’은 전국 수용시설 확충과 시설 민간위탁화, 단속체계 정비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고, 형제복지원은 보호 수용시설로 지정되어 신체장애인은 물론이고 중증의 정신질환자들까지 무자비로 수용해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그 결과 1975년부터 1988년까지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657명에 달했다. 그러니까 우리 시대 대표적인 수용의 폭력 역사가 국가에 의해 주도되었고, 사회복지시설이 실행했다는 추악한 민낯이 드러낸 셈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가 장애인을 포함한 가난한 사람들을 사회적 잉여집단으로 규정해 배제하고 격리했던 시설사회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런 법적인 근거도 없는 시설수용이 용인되고 부추겨지면서 난립했고 시설운영자는 국가로부터 보조금과 훈포장을 받았으며(형제복지원장 박인근은 198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부랑인 보호의 대부로 추앙까지 받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형제복지원의 만행이 35년 만에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겪었던 야만의 시설사회는 종언을 고한 걸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1,539개의 장애인거주시설들이 국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곳에는 29,086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이 사회적 잉여집단으로 분류되어 수용되어 있다. 그렇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구분되었고 ‘시설 장애인들’로 뭉뚱그려져 불릴 뿐 말끔히 지워지고 있다.

세상에 성녀 테레사가 없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시설수용도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승인
알림
662e53e662719@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