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기개통 근절 요구에 정부는 “법” 타령… 발달장애인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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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열린 스마트폰 근절 대책 토론회 ©더인디고
1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발달장애인 스마트폰 사기 개통 근절을 위한 법제도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더인디고
  • 지적장애인 가족 5명에게 18건이나 가입
  • 장추련 등 자기결정·피해보호 위한 가이드라인제작
  • 방통위·과기부, 근본적 대책엔 전기통신사업법개정 수긍
  • 사전 가이드라인 권고 의향엔 통신사핑계

[더인디고 조성민]

“발달장애인은 자립을 하면, 가장 갖고 싶은 물건이 핸드폰입니다. 그래서 핸드폰을 사러 대리점에 갔다가 스마트폰 개통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피플퍼스트 문윤경 대표의 인사말 중 일부-“

발달장애인 등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 사기 개통이 끊이질 않고 있어,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지속됐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재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국회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통신 3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대 이상 스마트폰을 개통한 장애인이 6천여 명이 넘는다. 이 중에는 장애인 한 명에게 무려 21대의 휴대전화를 줄줄이 개통시키거나, 지적장애인 가족 5명에게 18건이나 가입시켜 일가족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끼친 사례도 있었다.

강선우 의원을 비롯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한국피플퍼스트,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서울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사단법인 두루, 법조공익모임 나우는 1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발달장애인 스마트폰 사기 개통 근절을 위한 법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박현철 소장은 지난 2019년 9월 실제 있었던 한 사례를 소개했다.

발달장애인에게 7개 스마트폰 개통통신요금 700만 원 고스란히 떠안아

▲박현철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더인디고
▲박현철 소장 ©더인디고

박현철 소장에 따르면 한 스마트폰 판매업자는 A씨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휴대폰 약정이 끝나서 최신 휴대폰으로 바꿀 수 있고, 쓰던 폰은 팔아주겠다’며 개통을 종용했다고 한다. A씨는 결국 7개의 휴대폰을 개통했지만, 통신 요금이 700만 원에 달한 데다, 불어난 요금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장애인 단체의 도움으로 법원은 판매업자에게 준사기죄를 적용했지만, 700만 원의 요금에 대한 부분은 보상받지 못했다는 것. A씨는 현재 공공일자리로 일하며 매달 10만 원씩 변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소장은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 국회, 법원, 통신사가 나서서 ▲인지장애인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장애인 전담창구 개설 ▲이해하기 쉬운 설명서와 계약서 제작 ▲장애인권교육, ▲법 개정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실제 현행법상 발달장애인 등 인지장애가 있는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받으려 해도, 스마트폰 계약 등을 무효로 하거나 손해배상을 받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민법상 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통신서비스 계약 과정에서는 형식적인 동의 관련 서류를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라 판매자의 기망이나 강요 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계·공익법률가그룹 가이드라인마련과 전기통신사업법개정안 제시

이에 대해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은 “작년 9, 같은 토론회(김상희 의원 주최)가 열렸음에도 1년 이상, 정부도 통신사업자도 1년 이상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직접 인지에 어려움이 있는 고객 지원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며 “물론 전기통신사업법 등 법 개정을 통해 뒷받침하면 좋겠지만, 통신사 등이 선제적으로 적용하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장추련과 발달장애인, 공익법률가그룹 등이 호주 최대의 전기통신기업 텔스트라(Telstra)가 직접 제작한 삽화 가이드북을 참고해 마련됐다. 지난해 텔스트라 판매대리점은 원주민을 상대로 비양심적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방법원으로부터 약 440억 원의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인지능력이 부족한 고객을 위한 설명과 자기결정에 따른 계약조건과 스마트폰 종류 등을 결정토록 했다. 또 차별행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했고, 장애를 잘 모르는 사람도 직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순서도가 포함됐다.

▲김남희 임상교수가 발언하고 있다.©더인디고
▲김남희 임상교수 ©더인디고

이에 더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남희 임상교수는 비장애인도 복잡한 스마트폰 개통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는 가이드라인 적용뿐 아니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에게 전기통신서비스의 중요한 사항을 설명, 고지를 않거나 거짓으로 설명 또는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정했다.

하지만 김남희 임상교수에 따르면 형식적인 설명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피해를 받은 당사자가 이 조항(제50조)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또 이 법의 이용자 보호에 관한 조항(제32조)에서도 인지장애 고객의 피해를 보호하기 위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김 교수는 “호주나 일본처럼 피해에 대한 부담은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가 부담하되,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등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 행위 방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개방 방향으로 이동통신 개통 업무와 관련해 인지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을 지원하는 적절한 시스템 갖출 것과 개통과정에서 소비자의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현저히 초과한 서비스를 권유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동법 제32조에 ‘질병, 장애, 노령 등의 사유로 서비스 이용계약의 체결에 어려움을 겪는 이용자를 위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의사결정 지원체계와 안내자료를 마련하고, 계약체결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안내자료를 비치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제50조 금지행위 1항에 ‘이동통신역무를 제공하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이용자가 통상적인 서비스 분량(내용, 거래조건 등)을 현저히 초과하는 것임을 알고 이를 권유하는 행위’를 포함했다.

과기부·방통위는 법 개정 먼저”, 통신사업자는 정부가…”

하지만 이날 참석한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은 법 개정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결국 법적 근거가 있어야 가이드라인을 비롯해 이용자 보호금지행위등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방통위 이용자정책총괄과 최선경 과장은 “인지장애인 등의 의사결정 지원체계라는 추상적 표현을 어떻게 구체화할지와 동법 50조 금지사항 위반 시 입증 책임은 방통위에 있다”며, “문제는 통상적인 서비스를 현저히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기부 통신이용제도과 이정순 과장은 “통신서비스 부정방지를 위해 올해 10월부터 회선을 제한하는 노력 등을 하고 있다”면서도 “가이드라인 적용은 통신사가 하겠다는 의지가 있거나, 입법 근거가 필요하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최기전 서기관은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주최 ‘장애인 스마트폰 개통 피해 근절을 위한 국회 토론회’ 개최 이후 “스마트폰뿐 아니라 금융거래 등 발달장애인의 경제적 착취 전반에 대한 연구용역을 시작했다”며, “피해사례 유형 등을 분석해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한 장애계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역시 정부의 권고나 법 개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식이다. 협회 양승국 팀장은 “통신사가 자발적 노력을 할 경우, 또 다른 차별로 장애계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이유도 들이댔다. 지난해 LG유플러스가 정신적 장애인 등의 스마트폰 사기피해가 많다는 이유로 개통이나 기기 변경에 제한을 두면서, 인권위에 차별진정을 당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한편 전기통신사업법의 주관 부처는 방통위와 과기부가 맡고 있다.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통신정책은 과기부가, 이용자보호와 금지행위 등은 방통위가 맡는다.

▲강선우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더인디고
▲강선우 의원 ©더인디고

관련해 당장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이드라인 권고 주최는 어느 부처인지”, “오늘 토론을 계기로 통신사들에게 가이드라인을 권고할 의향은 있는지에 대한 더인디고의 질의에 방통위와 과기부 과장은 권고 주최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과기부 이 과장은 통상 권고는 통신사들의 수용 의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음을 시사했다.

가이드라인 적용조차 난색을 표한 마당이라 당장 발달장애인 등의 스마트폰 가입이나 기기변경 등에 따른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토론이 끝날 무렵,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장애계 관계자들이 분통을 터뜨린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강선우 의원은 “스마트폰 개통 사기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취약성을 악용한 경제적 학대이자,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지적하며, “이번 토론회에서 제안된 개선방안이 입법과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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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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