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인권조약 ‘결정’, 국내 ‘구속력 없다?’… ‘개인진정’ 실효성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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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조약 ‘결정’, 국내적 ‘구속력 없다?’... ‘개인진정’ 실효성 고민해야
▲지난 12월 8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4년 동안의 비준 촉구 노력의 결실을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개인진정 제도의 국내법 적용을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라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 더인디고 편집
  • 현재까지 17건의 개인진정 결정, 국내법 효력 단 한 건도 없어
  • 국내법 기속되지 않는 개인진정, 사실상 의미없어
  • 개인진정 결정, 국내법 인정한 대법원 판례… 유일한 근거
  • 선택의정서 활용할 묘안 찾아야 비준 의미 있어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국제노동기구(ILO)의 ‘개입’에 대해 정부가 ‘구속력 없다’고 대응하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을 14년 만에 이룬 장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차츰 나오고 있다. 선택의정서가 비준되면 개인진정이나 직권조사를 통해 장애당사자들의 권리구제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게 되지만, ‘의견 결정’을 얻어내도 국내 구속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최근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응해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노동자들은 국제노동기구(ILO)에 핵심협약인 제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협약)와 제29호(강제노동) 위반 여부를 물었다. 이에 ILO는 카렌 커티스 국제노동기준국 부국장 명의의 공문을 통해 “(노조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 정부 당국에 즉시 개입했다”면서 개입 첫 단계로 “관련 협약에 나오는 ‘결사의 자유 기준 및 원칙과 관련한 감시감독기구의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두 협약의 비준을 미루어오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비준한 바 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ILO 개입(intervention)은 ILO 등에 근거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 ‘협약 적용·이행에 관한 전문가위원회’ 등 공식적인 감독기구에 의한 감독 절차가 아니다”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개입’이 아니라 ‘의견 조회’, ‘의견 전달’의 의미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향후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가 국가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것이라는 점을 ILO 사무국에 적극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인권조약, 국내 구속력 없나’?

현재 우리나라는 ILO를 제외하고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정한 9대 핵심 국제인권조약 중에서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제외한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장애인권리협약, 강제실정협약 등 8개 국제인권조약을 비준했다. 특히 강제실종협약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와 함께 비준되었다.

비준한 국제인권협약들 중에서 선택의정서 비준은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개인진정), 아동권리협약 제1선택의정서(아동의 무력충돌 참여), 제2선택의정서(아동매매, 성매매, 음란물), 여성차별철폐 등이며, 이제 장애인권리협약도 포함되어 5개 협약이 비준한 상황이다.

선택의정서 비준의 의의는 국제인권조약의 감독기구(위원회)가 당사국에 의해 국제인권조약이 인정하는 권리와 기본적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믿는 당사자가 국내의 모든 법적 절차를 마친 후에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진정 제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차별진정 외에는 마땅히 권리구제제도가 없었던 장애계는 선택의정서 비준 요구를 해왔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나 사법부 등은 법적 기속력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개인진정 제도를 가장 활발하게 활용했던 국제인권협약은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의 제1선택의정서다. 현재까지 총 17건의 개인진정에 대한 결정(view)을 받았지만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발휘했던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국제인권협약에 따른 판단을 국내법적 기속력 없이 권고적 효력만을 인정하는 이유는 △국제인권조약의 결정이 ‘view’(견해)라는 형식으로 채택되는 점, △결정 과정에서 사법절차에 요구되는 당사자 변론이나 증거에 관한 증명 절차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조약기구 스스로 결정은 법적 기속력이 없으며, 단지 권고적 효력만을 갖는다고 밝히고 있는 점 등이다.

성실한 규범적 연계를 할 의무에 의존해야

물론 개인진정 결정에 대한 당사국의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한 당사국은 조약상 의무를 신의성실하게 이행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데, 특히 선택의정서의 개인진정 비준은 조약기구의 심사 권한을 존중해야 하고 그 견해를 신의성실하게 고려할 법적 의무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를 ‘성실한 규범적 연계를 할 의무’(duty to engage)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대법원 또한 판례를 통해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개인진정 제도를 규정한 선택의정서에 가입하였다는 것은 당사국 내에 있는 개인의 진정에 대한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의 심사권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이는 그 심사 결과에 따르겠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따라서 선택의정서 가입국은 보편적이고 다자간에 체결된 자유권규약에 따라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가 내린 개인진정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일 국제법상 의무를 진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8. 11. 1. 2016도10912 전원합의체 판결의 제2다수보충의견>

당사국이 선택의정서에 가입하는 등 국제인권조약의 심판 권한을 인정했다는 것은 당사국이 조약 위반 판단을 존중하여 국내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개인진정 제도를 비준한 당사국은 결정을 국내적으로 이행할 조약적 의무(국제법상 법적 기속력 있는 의무)를 진다는 점에서 결정이 ‘사실상 기속력’을 가진다는 견해도 있다. 만약 국내 법원이 조약기구의 결정은 권고적 효력이 있을 뿐 법적 기속력은 없다고 한다면 조약상의 의무를 신의성실하게 준수하지 않는 것이라는 거다.

2018년 7월, 스페인 대법원(Angela Gonzalez)은 조약기구의 개인진정에 대한 위반 결정을 국내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위법이라고 하면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의한 개인진정 결정은 유럽인권법원의 판결과 달리 국내적으로 이행할 수단이 없으며, 기판력의 원칙상 확정 판결을 변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약기구의 개인진정 결정에 대해 당사국은 적절한 고려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약기구 결정의 국내 이행을 위한 특별한 절차를 두지 않은 것은 법률 및 헌법 위임의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장애인권리협약 개인진정 제도활용 묘수 찾아야

비엔나조약법협약 제26조는 “약속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유효한 모든 조약은 그 당사국을 구속하며 또한 당사국에 의하여 성실하게 이행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제27조는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또한 제6조 제1항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국제법의 결정을 신의성실하게 국내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해석과 절차 등을 통해 국내적 실현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선택의정서 비준은 우리나라 장애당사자의 권리구제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전제하고 “지금부터는 개인진정이나 직권조사를 장애당사자 관점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또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 의해 무력화되지 않도록 헌법소원이나 국내적 이행절차를 구체적화 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 등 적극적인 방안 마련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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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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