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기후 위기…‘피해자 불가피성’ 호소 대신 주체적 참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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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기후위기...‘피해자 불가피성’ 호소 대신 주체적 참여해야
▲“I need to breathe(숨을 쉬어야 해)”: 탄 쿠안 아와(Tan Kuan Aw)의 자화상 ⓒ www.disabilitydebrief.org
  • 3만 여명이 참여한 기후정의행진…장애시민들도 참여해
  • 유엔기후협약에서 ‘장애’, 위기 취약성 인정받지 못해
  • 기후 위기 취약성에도 논의 거의 없어…공론화에 적극 나서야
  • 에코에이블리즘·피해자 불가피성 경계…참여하고 행동해야

[더인디고 = 이용석 편집장]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는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을 비롯한 대학생, 시민단체,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 장애가 있는 시민 등 각계각층 약 3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이전 기후정의행진은 기후 위기 심각성을 공감하고 이에 역행하는 정부 정책에 맞서려는 연대 의식을 공고화했다면, 올해는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기후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의 공감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요구가 이어졌다.

특히, 이날 ‘923 기후정의행진’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를 넘는, 차별을 넘는 수상한 우리의 힘’이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에 동참하고 다가올 기후 재난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죽은 듯’ 길에 눕는 ‘다이 인(die-in)’ 퍼포먼스에도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가들 ⓒ 전장연 페이스북 갈무리

장애가 있는 시민들에게 기후 위기 취약성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포괄적 대응 논의는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이집트에서 개최된 27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 : Conference of the Party 27)에서는 국제 장애인단체들이 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기후 위기 취약성을 강조하고 당사자 지위(constituency geotuency)를 인정받기 위해 분투했다. 당시 장애인단체들은 장애가 있는 시민들이 “기후 위기로 사회시스템 및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접근 장벽, 의료 서비스 접근성에 따른 열악한 건강 등 취약성에 직면했다”고 강조하고 “자연재해로 인한 비장애인의 사망률보다 최대 4배 높다”며 장애가 있는 시민들도 기후 위기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당사자 지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8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지속가능한 장애인의 참여와 인권보장 협력 방안을 의제화하기도 했다. 특히, 관련 연구를 해왔던 장애인개발원의 이혜경 정책연구부장은 우리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시작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장애인은 제도적 환경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장애인의 민감도 분석 등 장애가 있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기후위기인천비상행동과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한 ‘기후 위기와 장애인 인권’ 토론회에서는 “장애가 있는 시민들을 단순히 재난 불평등의 피해자로만 호명할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의 주체로서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기후정의행동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지난 8월 ‘이슈와 논점(제2129호)’을 통해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금지에 따른 건강취약계층 보호 관련한 해외 입법례와 정책 동향을 고찰하고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의 일방적 사용금지가 장애를 포함한 건강취약계층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편 장애 관련 세계 뉴스를 제공하는 뉴스레터 전문 웹사이트 www.disabilitydebrief.org의 장애가 있는 시민이자 연구자인 아인 켈리 코스텔로(Aine Kelly-Costello)는 ‘장애와 기후가 만나는 곳(Where disability and climate meet)’이란 칼럼을 통해 장애가 있는 시민들은 ”슈퍼태풍과 산불로 인해 잊혀지거나 팬데믹으로 인해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등 집단적 억압“에 처해있으며, 이러한 억압의 원인을 ‘빈곤’과 ‘소외’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는 대부분 제도와 화석 연료 기업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 정책 등이 원인이지만, 플라스틱 빨대의 금지, 차 없는 도시 계획 등 에코에이블리즘(Eco-Ableism)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수나 태풍, 폭염 등으로 장애인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불가피성의 논리는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구조적 취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기 때문에 위험한 논리라면서 ”국가의 기후 위기 논의를 장애주류화로 전환하기 위한 역량 강화와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만 해도 집중호우로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가 있는 시민과 가족들이 참변을 당했고, 태풍 카눈으로 전동스쿠터를 타고 귀가하던 장애가 있는 시민과 청각장애가 있는 농민이 밭에서 농작물을 관리하다 저수지 둑이 무너져 사망하는 등 이상 기후로 인한 참사가 있었지만 장애계를 중심으로 한 공론화의 움직임은 여전히 없다.

한편 ‘923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는 ▲기후 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할 것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할 것 ▲철도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할 것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 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사업을 중단할 것 ▲대기업과 부유층 등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 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것 등의 5대 요구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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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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