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정서] ①지하철 단차소송, UN 개인진정 가능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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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전경(좌)과 헌법재판소를 상징하는 휘장(우). 더인디고 편집
▲서울고등법원 전경(좌)과 헌법재판소를 상징하는 휘장(우). 더인디고 편집

  • CRPD 선택의정서 비준 후 권리구제 논의 본격화
  • 호주, 사법절차 모두 소진 없이 진정보상 등 끌어내
  • 선택의정서 2, ‘불합리한 지연’ ‘구제 가능성 희박주목
  • 2심서 막힌 단차소송, 헌법소원 거쳐 UN 진정 가능할까?

[더인디고 조성민]

권리침해를 받은 장애인이 UN에 개인진정을 할 때 ‘유엔장애인권협약(협약)’ 선택의정서에서 규정한 ‘국내 사법절차를 모두 소진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다.

‘선택의정서’는 당사국이 협약을 위반한 경우, 장애당사자가 UN 장애인권리위원회(UN위원회)에 직접 개인진정을 할 수 있는 ‘개인통보제도’와 당사국에 직접 방문해 조사할 수 있는 ‘직권조사제도’를 규정한 협약 부속 문서다. 우리나라는 협약 비준 14년만인 지난해 12월에서야 국회를 통과하면서, 실효적 권리구제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국내 사법 체계, 즉 대법원까지 모든 절차를 다 거쳐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관련 전문가나 실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법원의 1, 2심 재판부가 장애인차별 등 인권침해에 따른 권리구제소송을 기각하거나 피해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판결했을 경우, 원고 측이 이를 상고하더라도 구제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판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얼마든지 진정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나 헌법재판소로부터도 기본권 등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UN 위원회 차원에서 다룰 만한 가능성은 더 크다. 즉 국내 사법, 행정 시스템 등 권리구제를 위한 다양한 절차를 밟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개인진정’ 조건을 규정한 선택의정서 제2조 라항은 모든 이용 가능한 국내적 구제가 완료돼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구제의 적용이 불합리하게 지연되고 있거나, 실효적 구제의 가능성이 없을 듯한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단서를 뒀다.

관련해 호주의 경험과 사례 등을 중심으로 국내 선택의정서 이행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지난 17일, 18일 양일간 한국장애인연맹(한국 DPI)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호주 장애인단체(Persons with Disability Australia, PWA) 사만다 프렌치(Ms. Samantha French) 선임연구원과 호주 법률단체(Australia Centre for Disability Law, ACDL) 마크 패트릭(Mr. Mark Patrick) 변호사, 그리고 18일엔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개인진정을 추진한 바 있는 해마루 오재창 변호사가 초청됐다.

▲4월 17일, 18일. 한국DPI 주최로 열린 선택의정서 이행을 위한 국제워크샵. 왼쪽부터 오재창 변호사, 패트릭 변호사 사만다 상임연구위원, 서인환 위원장 ⓒ더인디고
▲4월 17일, 18일. 한국DPI 주최로 열린 선택의정서 이행을 위한 국제워크샵. 왼쪽부터 오재창 변호사, 패트릭 변호사 사만다 상임연구위원, 서인환 위원장 ⓒ더인디고

사만다 연구원은 “호주는 지난 2008년 협약과 선택의정서를 동시 비준했기에 처음부터 선택의정서 활용보다는 협약 이행에 관심을 뒀다”면서, “당시 (호주) 장애계는 협약 담당 부처인 호주 법무부와 지원부처인 사회복지부 등 정부와 법률, 인권단체 등과 협업을 통한 비준 이후 이행 확산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선택의정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활용 수단이라는 점으로 해석된다. 그 결과 호주는 지금까지 14건의 개인통보제도를 활용했다.

사만다 연구원에 따르면 ‘로렌 헨리(Lauren Henley) 사건’은 호주 대법원까지의 모든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UN 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교통사고로 시각장애를 가진 로렌 씨는 지난 2015년 한 방송사를 상대로 호주 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무료 방송이지만 음성해설을 하지 않아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호주 인권위는 해당 방송사가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로렌 씨는 법률단체의 지원을 받아 호주 행정법원으로 가져갔지만, 2017년 법원 역시 인권위 결정을 관할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로렌 씨는 호주 국내 재판에서도 성공 가능성이 보이질 않자, 항소를 포기하고 UN 개인 진정을 택했다. 그 결과 UN 위원회는 지난해 ‘호주 정부가 협약 제4조(일반의무), 제9조(접근성) 등을 위반했다’며 적당한 보상과 개선 조치를 권고했다. 국내 절차 2년을 포함해 모두 7년이 걸린 셈이다.

해당 사례로 비추어 볼 때, 앞으로 국내 장애계의 UN 진정 활동 등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개인 진정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여겨졌던 국내 모든 사법절차 소진 문제에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예컨대 2심에서 멈춘, 일명 지하철 단차소송 사건재소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헌법재판소에 장애인차별금지법(4)이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도시철도 관계 법령등에 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한 후 개인진정을 추진해 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단차소송은 지난 2019년 7월,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의 연단 ‘간격’ 및 ‘단차’ 등으로 인한 휠체어 사용자들이 피해를 알리고, 그동안 안전에 무관심한 교통사업자에 경종을 울리고자 ‘서울교통공사’를 대상으로 한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법원은 1, 2심 모두 해당 사건을 기각했다. 오히려 원고 1명당 500여만 원의 소송비용을 서울교통공사에 반환하라는 결정까지 나왔다. 다만 2심은 ‘지하철 단차’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로 개선돼야 할 사항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의 제3항의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 정당한 사유를 들었다.

관련해 일부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개인진정 사례로 ‘단차 소송’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원고 측은 지난 2021년 9월, 2심에서 패소한 후 상고를 포기했다. 대법원에서도 구제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선택의정서 비준 이전이라 더 이상 개인진정 요건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오재창 변호사도 이날 더인디고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절차 소진의 원칙을 다해야 맞지만, 꼭 문헌적으로만 해석할 문제는 아니다”고 전제한 뒤, “단차소송 역시 대법원까지 절차를 밟지 않았더라도 현재까지 차별이 존재하는 데다,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만큼 개인진정은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안전한 절차를 위해 헌재 결정을 보고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UN 위원회는 협약 위반에 방점을 두는 만큼, 피해 당사자 등이 얼마나 다양하게 구제 노력을 했는지, 국내 사법·행정시스템 등에 의해 구제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살피는 만큼 운용의 묘를 살려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변호사는 그러면서 “개인진정 역시 하나의 권리구제 절차에 불과한 만큼 국내 사법절차와 동시에 협약 민간보고서, 유엔인권위원회의 정기적인 인권상황 점검(Universal Periodic Review·UPR), 장애특별보고관 제도 등을 다양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지하철 등에서의 집회 시위를 방해받는 경우 장애인협약만이 아니라 자유권 규약의 ‘표현의 자유’ 위반으로 개인진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시간 자체가 오래 걸린다. 패소에 따른 상대방 변호사비용 부담도 당사자 몫인 상황에서 호주의 사례 등은 참고할 만하다는 평가다. 다만 국내 절차를 다 소진하지 않을 경우 얼마나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UN 위원회 진정 사례 분석과 해당 위원들의 의견 등도 국내 장애계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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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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