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오체투지 나선 장애인부모들 “尹, 국가책임 약속해야”

0
517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14일, 서울 1호선 용산역 맞은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집무실 앞까지 약 1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더인디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14일, 서울 1호선 용산역 맞은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집무실 앞까지 약 1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더인디고

  • 발달장애인 죽음 멈춰달라… 1km 오체투지
  • 윤석열 정부, 말뿐인 ‘약자동행’… 돌봄민영화 비판
  •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구축에 정부·국회 나서야!

[더인디고 조성민]

“아이와 살아온 세월만큼 낡은 몸이라 솔직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편안하게 눈 감을 미래를 위해, 지역사회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가장 낮게 내 몸을 낮추고 절박한 마음으로 오체투지 해보려 합니다.
사랑으로서 나를 돌아보게 해준 자랑스러운 아이들아, 우리는 보통의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 투쟁!”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발달장애인 참사’의 사슬을 끊어내고자 아스팔트에 온몸을 내던진 한 발달장애인 엄마의 각오이자 윤석열 정부를 향한 호소다.

▲양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용산 집무실까지 오체투지에 나선 장애인부모들 ©더인디고
▲양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용산 집무실까지 오체투지에 나선 장애인부모들 ©더인디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14일, 서울 1호선 용산역 맞은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집무실 앞까지 약 1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했다. 전국 600여 명의 장애인부모들은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서라면, 기어서라도 용산 대통령실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의도다. 오체투지에 참여한 부모가 600여 명일 뿐, 전국에서 장애인가족 1000여 명이 용산에 집결했다.

오체투지는 불교에서 양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큰절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종교를 넘어 부당하고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희망의 몸짓으로 해석된다. 장애인 부모들에겐 해마다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임이 끊이지 않자, 삭발과 단식 농성에 이어 부모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절규이기도 하다.

▲양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용산 집무실까지 오체투지에 나선 장애인부모들 ©더인디고
▲양 팔꿈치와 무릎, 이마를 땅에 대고 용산 집무실까지 오체투지에 나선 장애인부모들 ©더인디고

이날 부모들이 길바닥에 자신의 몸을 던진 데에는 발달장애인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해 더인디고에서 취재 혹은 기사화한 사건만도 10건이 넘는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도 5명이 죽거나 죽임을 당했다. 부모가 자녀를 죽이고 자신도 죽거나 자녀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이다. 화재나 폭우 등에서의 참사도 마찬가지다.

유엔도 지난해 9월, 한국의 이 같은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부모연대는 지난 4월부터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각 지자체와 교육청을 향한 전국 순회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날 ‘오체투지’는 중앙정부까지 직접 겨냥했다.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를 향한 투쟁을 통해 국회뿐 아니라 광역, 기초단위까지 부모들의 요구와 투쟁 의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윤종술 부모연대 회장은 “반복되는 참사는 발달장애 정책의 총체적 부재에 기인한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그 어떤 정부도 먼저 나서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지원대책을 수립한 적은 없다”며 “특히, 윤석열 정권은 유엔 협약도 위반한 채 탈시설을 가로막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서비스는 시장에 내맡기는 야만적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대통령실을 직격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지난해 12월, 발달장애인 가족의 연이은 비극적 선택을 막기 위한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고서도, 참사 원인과 대책을 논의하는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결의안은 발달장애인 참사가 끊이지 않자,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바 있다.

▲부모연대 윤종술 회장과 조계종 사노위 지몽 스님 등이 함께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더인디고
▲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과 조계종 사노위 지몽 스님(사진 세 번째) 등이 함께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날 오체투지에 함께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지몽 스님 역시 “가족의 참사를 멈추고자 한다면, 그 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그들의 간절함과 고통을 볼 수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겉과 속이 다르면 이 같은 대책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현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를 우회해 비판했다.

지몽 스님은 이어 “불안과 막막함, 정신적 경제적 고통으로 매일 수십 번씩 절망과 좌절을 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부모나 가족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과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사노위는 지난해부터 발달중증장애인과 함께 죽음에 이른 가족들을 위한 49재 등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등 이번 오체투지도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의 역사적 성과와 한계 등도 부모들을 아스팔트로 내 몬 원인이다.

부모연대에 따르면 2018년에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209명 집단 삭발과 단식 투쟁, 그리고 2500명의 부모가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의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끌어냈지만, 구체적인 지원방침은 부재하다는 평가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맞이하며 한 달에 한두 번꼴로 발달장애인 참사를 목격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 지난해는 557인의 삭발 투쟁과 15일간 지도부의 단식 투쟁을 이어갔고, 21대 국회에선 여야 의원이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결의안도 끌어냈다. 하지만 이 역시 윤종술 회장의 지적처럼 후속 대책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면서도 사회서비스 시장화, 돌봄 민영화 등으로 정부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국가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라는 것.

▲오체투지를 마친 부모연대 회원과 조계종 사노위 관계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에 요구안이 담긴 문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잠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인디고
▲오체투지를 마친 부모연대 회원과 조계종 사노위 관계자들이 용산 대통령실에 요구안이 담긴 문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잠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에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전 생애에 걸쳐 당사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지원체계를 위해, 지역사회-중앙정부-나아가 시민사회까지 촘촘한 협력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싸움을 다시금 시작한다”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장애 영유아 조기 개입 및 지원체계 구축 ▲모두가 함께하는 통합교육 보장 ▲발달장애인 자립과 주거권 보장 ▲발달장애인 전 생애 지원체계 구축 ▲발달장애인 참사를 멈추는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 관련 기사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승인
알림
662ea77d150d2@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