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정서] ② ‘질긴 놈’이 ‘모진 국가’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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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조약 ‘결정’, 국내적 ‘구속력 없다?’... ‘개인진정’ 실효성 고민해야
▲지난 12월 8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4년 동안의 비준 촉구 노력의 결실을 환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개인진정 제도의 국내법 적용을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라는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 더인디고 편집

  • 장애인단체 역량 기반, 법률·봉사자 필수
  • 상시 협력체계 구축과 공론화 전략 중요
  • 개인진정 효용성? “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 없어

[더인디고 조성민]

UN 장애인권리협약(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이후 ‘개인통보제도’와 ‘직권조사제도’ 활용 등을 놓고 장애인단체마다 논의가 한창이다.

호주의 경험과 사례 등을 중심으로 국내 이행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워크샵이 지난 4월 17일에서 18일까지 한국장애인연맹(한국DPI)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호주 장애인단체(Persons with Disability Australia, PWA) 사만다 프렌치(Ms. Samantha French) 선임연구원과 호주 법률단체(Australia Centre for Disability Law, ACDL) 마크 패트릭(Mr. Mark Patrick) 변호사, 그리고 18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개인진정을 추진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오재창 변호사가 참여했다. <편집자 주>

앞서 더인디고는 호주의 경험을 통해 국내 사법절차를 모두 소진하지 않고도 개인진정 가능성이 있는 국내 장애인차별 사건, 일명 지하철 단차 소송을 다뤘다. 또한 호주는 2008년 협약과 선택의정서를 동시에 비준함으로써 한국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선택의정서의 효과적인 이행을 위한 국내 장애계의 역할과 과제’ 등을 살펴봤다. 이틀간 국제 워크샵에서도 중점으로 다룬 주제이기도 하다.

우선 선택의정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외국어(UN 공용어)’와 ‘법률적 지식’은 기본이다. 기존 사례에 비춰볼 때 결과까지 약 3~5년이 걸리는 만큼 ‘재정 여건’과 ‘버티는 힘’ 역시 두말할 나위 없다.

협약 이행에 관한 국내 차원의 활동도 염두에 둘 과제다. 예컨대 정기적인 이행 모니터링, 교육, 개인진정 전 과정에 걸쳐 해당 사건 등을 포함한 협약 이행의 중요성을 사회적 이슈로 확산하는 것 등을 꼽는다.

장애인단체 내부 역량에 주변 자원 활용 관건정부·인권위 역할은 글쎄

결국 첫 개인진정의 첫발을 어떤 사건으로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를 끝까지 끌고 갈 장애계 내부 역량은 현실적인 고민이자 과제인 셈이다.

사만다 연구원은 이에 대해 “피해 당사자 혹은 장애인단체의 단독 추진보다는 법률지원단체(예. 공익변호사그룹)나 사회적 여론 형성을 위한 언론 등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닌, 전략적으로 협약 체결을 통해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정 문제에 대해선 “호주도 선진국은 맞지만, 장애인단체들은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국내 장애계가 개인진정과 관련해 정부 등을 통한 재정 지원체계를 구축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 등 독립기구에서 추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호주의 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국가와 인권위 모두 이해충돌 방지원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개인진정 이후에도 공론화와 모니터링 등 전략적 수행이 차별적 제도 바꿔!

개인진정 과정에서의 장애인단체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선 IDA(국제장애인연맹)의 ‘선택의정서 팩트시트’가 주요해 보인다.

사만다 연구원 또한 ‘진정 이전’부터 ‘진행 과정’, 그리고 ‘사후 조치’ 등 전 과정에 걸쳐 단계별 구체적인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종합하면 ▲진정 전에는 피해자의 권리침해 여부, 국내법과 정책의 협약 위배, 선택의정서 절차적 조건에 따른 확인 등이 필요하다. 이어 ▲진정 절차 전반에 걸쳐 조력하며 언론과 대중, 정부 등을 상대로 공론화하고, ▲진정 절차가 마무리 된 후에도 위원회의 권고안에 대한 분석과 효과적 이행을 위한 모니터링 등 위원회에 보고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사만다 연구원은 “장애인단체가 협약과 선택의정서 등의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인진정 마무리까지의 역량이 있느냐가 관건”이지만, “이 과정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학생 등의 봉사자 참여부터 국내·국제 장애인단체와 연대, UN 권고에 따른 정부 설득 노력 등이 절실하다”며, 지금까지의 진정 과정에서 얻은 경험 등을 쏟아냈다.

관련해 오재창 변호사도 2004년부터 14년이나 걸린 양심적 병역 거부 개인진정제도 활용 경험을 예로 들며, “반드시 법률 등 전문가의 지원, 당사자와 추진 단체의 오랜 인내와 의지, 그리고 전 과정에서의 전략과 홍보 등 3가지를 꼭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더했다.

수년에 걸친 싸움, 실효성 있을까 질문엔 국내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 들여다보라

하지만 진정 절차를 통해 당사자가 이겼어도 당사국이 UN의 권고를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선택의정서 비준에 따른 실효성 여부 역시 관건이다.

오 변호사는 이에 대해 “14년이나 걸렸지만, 결국 계속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개인진정과 직권조사 활용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오 변호사는 이어 “한국 정부가 개인진정에 따라 권고를 받게 되면 관보 등에 실린다. 국제적으로는 협약 이행을 약속하고는 안 지켰다는, 게다가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게 되면 도덕적,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국내 사법 판결만큼의 존중은 아니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압력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지점에서 장애인단체가 향후 진정 사건을 통해 유리한 결정을 끌어냈더라도, 만족하지 말아야 할 이유”라며, “이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도 한국 정부가 권고사항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 변호사에 의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에서 모두 패소함에 따라 국내 법률상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국회, 인권위 등을 찾아 협조를 구하고, 토론회와 언론 홍보 등 사회적 문제로 제기했지만, 국민 여론 역시 신통치 않았다.

이때 남은 한 가지가 자유권 규약을 통한 개인진정이었다는 것. 그 결과 2007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에 걸쳐 UN 권고를 끌어냈다. 문제는 한국 정부, 법원, 헌재 등의 입장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과정에서 지속적인 토론회와 변론, 입법 요청 등 전방위적으로 노력한 결과, 2018년 헌재와 대법원 판사들도 양심적 거부권을 인정했고, 국회 역시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국제사회 수준이 국내 여론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국 사법부도 움직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시 시작 단계에 불과한 한국의 선택의정서 이행,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질긴 놈이 이긴다’는 투쟁 교과서적 말을 곱씹어 봄직하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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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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